익숙한 이름, 생경한 하루

[D-294] 문박

by Mooon

D-294. Sentence

문박


IMG_0610.heic @성신여대점 스타벅스

느낌의 시작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나의 닉네임은 문박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에, 당연히 붙여진 별명일 거라 뻔히 짐작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는 이미 그 전부터 문박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닉네임이 있었던가 싶다.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설명적이지도 않고 모호하지도 않은 그 중간의 미묘한 균형을 잘 잡아낸 이름. 그래서 나는 이 별명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찰떡의 언어라고 느낀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흐름


오늘은 성신여대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프로젝트 온라인 정기회의가 있어, 학교 앞 스타벅스로 향했다. 대학교 앞 스타벅스는 예상대로 이미 북적였다.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 속에서, 결국 나는 가장 한산한 지하에 자리를 잡았다. 사이렌오더로 커피를 주문하고, 텀블러를 건네주러 올라갔다가 문득 오랜만에 Order Status 모니터를 보게 되었다. 거기엔 선명하게 뜬 내 닉네임, “문박.” 순간적으로 마음이 멈췄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했던 이름이 왜 그렇게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졌을까. 때때로 삶이 그렇다. 매일 부대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던 것들이, 문득 아주 다른 얼굴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오늘의 문박이 그랬다.


하지만 낯설게 다가온 닉네임의 반짝임과 달리, 나의 현실은 여전히 바쁘게 흘러갔다. 지하층에 자리를 잡았지만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아, 결국 짐을 모두 챙겨 다시 2층으로 옮겨야 했다. 저녁 6시에는 전문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고, 그 일정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네 스타벅스로 이동해야 했다. 이동 중 친정엄마로부터 날아온 문자가 나를 또다시 긴장시켰다. 둘째가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절뚝거린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예정되었던 스포츠 학원을 취소하고, 병원에서 진료받는 사진을 보며 한숨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겨우 도착한 동네 스타벅스. 설문지를 수정하고, 참고 이미지를 정리하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를 이어가던 중, 불현듯 날아온 메시지 한 통. 인터뷰가 예정되있던 전문가께서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터뷰가 어렵다는 연락이었다. 준비하던 긴장감이 허무하게 풀리며, 밀려드는 공허감이 나를 휘감았다. 일은 여전히 쌓여 있고, 할 일은 끝나지 않았는데도, 막상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자 오히려 허전함이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모니터에 뜬 “문박”이라는 닉네임이 오늘따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현실은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가볍지않은 일상인데, 닉네임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건네받은 또 다른 자아처럼 아득했다. 오늘은 긴 하루였다. 수업, 회의, 이동, 돌봄, 취소된 인터뷰까지. 쉼 없이 이어진 하루가 문득 멈춰선 순간, 나는 닉네임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서 있었다. 이제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문박, 다시 나를 불러내며. 사업계획서를 조금 다듬고, 집에 돌아가 둘째의 상처를 살피고, 첫째와도, 남편과도, 엄마와도 얼굴을 마주하자. 그렇게 또 한 번 길고 긴 보통날을 마무리하자.



내 안의 한 줄

문박, 내 현실보다 여유 있어 보였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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