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맨땅에 헤딩합니다

[D-303] 청춘이란 이름의 춘천

by Mooon

D-303. Sentence

청춘이란 이름의 춘천

@원주로 가는 KTX안

느낌의 시작


청춘이란 이름의 춘천. 오늘 기차 안에서 내 손에 들어온 책 제목이다. 순간,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누구이며,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은 무엇일까. 이름 하나에 담기는 인식과 무게가 내 하루를 설명하는 거대한 언어 같았다.



마음의 흐름


읽어야 할 논문과 자료가 산더미다. 특히 영어 자료들을 번역하는 일이 생각보다 진이 빠진다. 논문 하나를 통째로 번역하지 못해 결국 조각조각 나누어 AI에 돌리는데, 손이 많이 간다. ‘내가 못하는 건가, 아니면 AI 기술이 아직 덜 다듬어진 걸까?’ 혼잣말을 반복한다. 그래도 기묘하게 재미있다. 스트레스를 왕창 받으면서도, 새로운 걸 이해하고 찾아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읽을수록 이상하게 끌린다. 이런 나, 혹시 공부에 집착하는 변태는 아닌가 싶다.


원래 나는 움직이는 차나 기차에서 글자를 보면 금세 멀미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핸드폰조차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급해 노트북을 열었다. 켜자마자 느낌이 쎄했다. 결국 5분도 못 버티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의자에 꽂혀 있던 책 한 권. 《청춘이란 이름의 춘천》. 책 제목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어떤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첫째아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독재자'라고 부를 것이다. 가끔은 '융통성 없는 꼰대'라 생각하는 듯하다. 나를 가르쳐주셨던 교수님께서는 ‘잡념이 없는 사람’이라 불러주셨고, 대학원 선배는 나를 ‘독일 전차 같다’고 말했다. 다 제각각의 이름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무게를 견뎌야 해도 안심이 되는 사람.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런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


오늘은 서울로 올라가는 스쿨버스 예약을 놓쳐서 결국 택시를 타고 원주터미널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가보다 아내 쪽 가족들과 더 마음이 잘 맞는다며 매년 농사일도 돕고, 함께 여행도 간다고 했다. 듣는 내내 부러웠다. 가족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힘든 관계 아닌가. 그런데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언젠가는 가족들과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힘이 되면서도 편안히 기대는 사이.


이제 곧 연휴가 시작된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길다. 다들 ‘길어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내겐 웃어넘길 일이다.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인사드려야 하고, 두 아들을 돌봐야 한다. 동시에 밀려 있는 프로젝트 자료들도 씨름을 기다린다. 몸은 분주할 게 뻔하다. 그런데도 감사할 일임을 다시 기억한다.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고, 함께 밥을 나눌 수 있으니까.


나는 요즘, 몸은 분주해도 마음만큼은 여유로울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다. 학원 과목처럼 따로 과외가 있다면 당장 등록하고 싶을 지경이다. 없다면 독학이라도 해야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 맨땅에 헤딩하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가고, 어떻게든 마무리될 것이다.



내 안의 한 줄

무게와 여유 사이, 믿을 만한 이름으로 남고 싶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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