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의 방향

[D-429. Sentence] 망설임

by Mooon

D-429. Sentence

망설임


IMG_5784.jpg @ujd.bookshop


김애란 작가를 잘 알지는 못한다. 작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며칠째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단어가 있다. 망설임. AI와 사람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 짧은 대답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망설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만이 가진 태도라는 말. 나는 그 문장을 붙잡고 며칠을 보냈다.


지난주 월요일 밤,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피하고 싶었고, 최대한 부드럽게 넘기고 싶었지만 결국은 말해야 앞으로 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편안하게 끝날 수 없는 대화였다. 그동안 망설였던 시간만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나름은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몸으로 먼저 드러났다.


지난 화요일, 원주에 내려가 수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쑥떡을 몇 입 먹었을 뿐인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수업을 마친 후,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저녁도, 다음날 마신 스벅음료도 내 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병원은 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버텨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야간병원에 가서야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왔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리더의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를 이끌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관계 속에서 긴장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 나는 늘 그 옆에서 조용히 서포트하는 역할이 더 편했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서게 되었고,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였다. 혹시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을까.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내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망설임의 중심에는 타인이 아니라 ‘나’가 있었다.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가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내가 무너지는 순간을 겪고 싶지 않아서. 결국 말해야 할 말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망설임은 사랑이 아니라, 때로는 회피라는 것을. 그리고 그 회피는 결국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지금은 조금씩 정리되어간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도망가지 않는 쪽을 선택해보려 한다. 누군가를 진짜로 생각한다면, 망설임 없이 말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다음 사업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며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을 지나왔다. 여전히 나는 망설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서 있다.



내 안의 한 줄

망설임의 끝에서야, 나의 방향을 선택한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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