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가을에는(최영미)

[하루 한 詩 - 172] 사랑~♡ 그게 뭔데~?

by 오석연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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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한복판에

새하얀 뭉게구름 수놓으면

가을이 곁에 있음을 짐작한다.


누군가 그리움과 사랑이

한없이 사무치고 보고픈데

그럴 수 없을 때에는

한번쯤 내마음을 부정하고 싶다.


그래도 한 남자의 가슴에

두둥실 그리움 피어오르면

남자의 계절이 왔음을 짐작한다.


그녀가 가슴 자리로 들어오고

키를 낮추어 곁에 누우면

그리움이 사랑이

구름 솜사탕 녹듯 무너질 것인데

턱을 높여서 무엇하리

문을 닫아서 무엇하리

벽을 쌓아서 무엇하리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움이 아니어도 좋다

내 속에 들어와 누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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