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7. ‘사랑(愛)’의 의미(7. 사랑과 집착)

삶은 의미다 - 87

by 오석연

‘집착(執着)’‘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이 곧 집착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얼핏 보면 사랑과 집착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 수 없지만 둘은 근본 자체가 다르다. 사랑은 배려심이 포함된 감정이고, 집착은 반대로 이기심이 포함된 감정이다. 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늘 희생하고 노력하는 반면, 집착은 상대방이 고통스럽든, 슬프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상대를 소유함으로써 나만 행복하고 만족하면 끝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 마음이 집착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수단이고 상대방이 목적이라면 사랑. 상대방이 수단이고 내가 목적이면 집착이고 욕망이다.

집착이 일단 생기면 사물을 바라보거나 해석하는 방향이 한 방향으로 고착되어 다양한 관점이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므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 방향으로 갇힌 생각과 감정은 점점 확대되어 위험한 생각으로 치닫거나 현실감을 상실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집착은 경직되고 편향된 상태를 거쳐 다양한 병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종교에서도 집착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집착이야말로 제일 어리석고 비참하며 고통을 불러일으킬 뿐인 것으로 이해한다. 중생들이 집착을 떨쳐내고 해탈에 이르는 것이 성불이다. 기독교의 십계명에 ‘남의 재산과 배우자에 대하여 시기하고 탐내지 말라’라고 적혀 있고,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진정한 사랑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집착이란 감정을 경계하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질투심이 더 심해지고, 정도를 넘어선 질투가 증오와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잘못된 사랑에서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집착이 심해질수록 그 고통과 피해는 상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부담감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랑의 감정도 멀어지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집착이 심한 상대는 불행을 자초하기 전에 멀리하는 것이 좋다. 길을 가던 커플 중 한 사람이 지나가는 이성을 쳐다보면 ‘왜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느냐’라며 닦달하는 것.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데, ‘여자야, 남자야?’, ‘너 어디 갔었어? 핸드폰 내놔 봐’ 식으로 나온다면 집착의 시작일 수 있으니 사랑이 깊어지기 전에 일찍 헤어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사랑의 유형 중에는 소유애가 집착에 빠지기 가장 쉽다. 집착이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당연하다. 소유애에 빠진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긴장하고 질투가 심하여 집착으로 발전하게 된다. 상대방이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애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의심이 들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되어 더욱 매달리게 된다.

사랑의 또 다른 감정 중에 집착과 비슷한 질투가 있는데, 질투는 사람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감정에 비해 집착은 소유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사물이나 주제 등을 대상으로도 일어난다. 특히 물건이나 주제에 집착하는 증상은 자폐성 장애의 증상이며, 지능이 높은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강한 집착이나 질투와 같이 비뚤어진 감정은 결코 끝이 좋을 수가 없다.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어쩌다가 둘이 맺어져서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가정폭력이나 의처증, 의부증 등의 불화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혼하고 나면, 단순히 사귈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 ‘뒷간에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연인 사이의 집착 문제점은 다양하다. 집착의 뿌리는 소유욕이기 때문에 소유하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면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상대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의심한다. 집착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거나 쳐다만 봐도 불안해하고, 심지어 외모를 칭찬하는 것만으로도 ‘저놈이 흑심을 품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질투하게 된다. 이 모두가 ‘자기 연인을 빼앗기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다.

연인관계든, 부모자식관계든 가장 가깝고 사랑이 넘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집착의 형태가 나타난다. 연인은 상대를, 부모는 자식을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집착이 싹트기 때문에, 상대방이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판단할 때 집착이 더 심해지게 된다. 당연히 갈수록 심해져 가는 집착으로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낀 상대방은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모두 접고 떠날 수밖에 없다. 내가 우긴다고 사랑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무조건 좋은 줄 안다. 그것은 바르게 사랑할 때의 이야기다. 사랑의 감정이 조금만 옆길로 새면 집착이란 수렁으로 빠진다. 대부분 과한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흔하며, 집착이 전혀 없는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지기 쉽다는 딜레마가 있다. 바람이 통할 정도의 적당한 사랑의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사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생존을 위해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삶을 시작한다. 동물 중에서 가장 미숙하게 태어나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요구하고,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는 두려움이 집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처음에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집착하던 끈끈한 관계가 역전되어 어머니가 자식에게 집착하는 관계로 완전히 뒤바뀐다. 어머니들은 때로는 사랑이라는 구실로, 때로는 의무라는 구실로 어린아이와 청년과 어른을 자기 자신 안에 묶어두려고 한다. ‘헬리콥터 맘’이 생기는 이유다.

애착과 집착의 경계는 무엇인가? 애착은 상대의 취미와 성품을 존중하는 것이고, 집착은 상대의 모든 것을 내 소유물처럼 다루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신뢰가 굳건할수록 서로의 취미와 성향에 관대해진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집착은 사랑을 힘들게 할 뿐이다. 당신 없으면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서로 사랑이 깊었던 커플일수록 배신을 하게 되면 증오심을 커진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으려 하는 마음이 크고,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원수가 되고 복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건 사랑이 아니고 집착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는 생각이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끈질기게 구애하다 보면, 결국 그 여자를 얻게 된다는 믿음이다. 더욱 그런 남자를 남자답다고 여기고, 심지어 이런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스토커’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상황도 변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신념으로 이루어지는 남자의 구애는 정신 질환이 되었고, 구애 행위는 죄가 되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고 집착일 뿐이라는 변한 시대의 사랑에 대한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

세상의 일들이 모두 마찬가지지만, 사랑이라도 억지로 강요하면 결국 불행해지고 만다.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잘못된 집착에 빠지기 쉽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다. 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남의 인생에 나의 전부를 걸 수 있겠는가?

집착은 나와 네가 모든 것이 같아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감정의 일방통행이다. 사랑은 서로의 보폭을 인정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며,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꽉 잡고 있어야만 내 사랑이라는 생각을 넘어, 때로는 놓아주어야 진정 내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달으시길~!



https://brunch.co.kr/@dd05cb7dd85a42c/331


keyword
이전 06화86. ‘사랑(愛)’의 의미(6. 사랑과 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