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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사랑(愛)’의 의미(8. 사랑과 자유)

삶은 의미다 - 88

by 오석연

‘자유(自由)’‘남에게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의 이면에는 어느 정도의 구속과 집착이라는 방해물이 함께 붙어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랑에서 자유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구속과 집착이다. 당연히 사랑은 자유냐, 구속이냐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고, 사랑과 자유는 함께하기 어려운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수많은 사랑 경험자나 전문가들은 자유가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이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 맞다. 연속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도 결코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도 사회적 도덕관념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대부분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에도 서로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녀관계에서 이 자유가 없다면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관계가 되어 더 도망가려는 마음만 키우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내 마음대로 살 수도,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다. 늘 감정을 감추고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자유를 꿈꾼다. 자유는 그냥 꿈으로만 존재할 때가 더 많다.

사르트르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애인이 외적인 압력 없이 자유롭게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나에 대한 사랑을 자유롭게 철회할 가능성도 함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대는 나를 자유롭게 사랑하지만, 그러한 상대의 자유는 딱 한 번만 작용했으면 하는 불가능한 소망을 품게 된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은 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지만, 나를 사랑하자마자 그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상대의 자유는 가장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의 열정을 가능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사랑을 비극으로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자유는 어떻게 관계 맺어야 이상적인지 범인(凡人)에게는 난해할 뿐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자유가 모순된 개념이고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사랑과 자유가 상반된다고 배워 왔고, 사랑은 자유와는 달리 구속이란 느낌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발생하는 오해다. 사랑의 대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다. 사랑의 대상이 이성(사람)일 경우 그게 안 된다는 것이 딜레마다. 사랑과 자유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은 자유를 요구하고, 자유는 바로 사랑할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자유는 사랑할 자유를 말한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감당할 수 있다. 부모 말을 잘 듣던 자식이 애인이 생기면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것도, 마마보이가 애인을 지킬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 애인이 자유롭기에 구속하여 자유를 뺏는 순간, 역동적으로 펄펄 살아 있던 사랑은 움직이지 못하고 죽어버리게 된다. 결국 애인도 사랑도 살기 위해 도망쳐버린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으로, 서로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사랑은 순수하게 강요되지 않고 서로가 먼저 배려하는 것부터 시작되기에 사랑하는 사이에도 서로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자유를 누리려면 내 생각과 선택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남녀관계에서 자유가 없다는 것은 내 생각과 선택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자유가 없는 관계는 나 자신을 잃고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병적인 관계가 되기 쉽다.

헌신이란 자신이 가진 소유물이나 시간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는 것 하나 아까운 것이 없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랄 뿐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모든 것을 헌신한 상대는 결코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도리어 남녀관계에서의 절대적인 헌신은 사랑의 기한을 단축할 수도 있다. 사랑할 때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연인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라는 드라마 대사도 있지 않은가. 무한한 자유야말로 영원한 자유다.

사랑은 두 사람 간의 강력한 연대이다. 두 사람 사이의 연대는 구속과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과 자유가 함께하듯 연대와 자유는 함께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유를 요구하게 되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법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할 자격도 없다. 자유가 없는 노예는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과 사랑의 대상에게 비극만 초래할 것이다. 주인의 눈치를 보아야 하니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도, 마음껏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사랑은 자유를 요구하는 법이다. 남녀의 사랑이 둘 사이의 강한 연대로 발전한다. 이렇게 자유와 사랑도, 자유와 연대도 동전의 양면으로 공존한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라는 한용운의 ‘복종’이란 시도 있다. 때로는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 묶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인이 자유롭기에 구속하려고 했는데, 애인을 구속하자마자 사랑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는 사실, 애인에게서 자유를 뺏는 순간 사랑도 식어버리는 역설을 꼭 명심하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건강함이란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지 말고 가능한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내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불가능한 바람이고 이루어질 수도 없는 꿈이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도 없다. 사랑은 늘 움직이는 자유로움에서 내게 왔고, 내게서 떠나가는 것. 사랑의 자유로운 속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황홀한 사랑에 빠지는 첫걸음이다. 사랑하는 자유를 얻게 되면 사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 사랑하되 구속하지 마라~! 사랑하되 집착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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