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38
‘애무(愛撫)’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어루만지는 애정 표현’으로, 접촉함으로써 상대에게 애정을 나타내는 비교적 좋아하는 행위이다. ‘스킨십(skinship)’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원래 영어에 있는 단어는 아니고 한국어식 영어 표현이다. 평상시 애무는 포옹이나 키스와 같은 일반적인 스킨십으로 이루어지지만, 성교시의 애무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성기나 그 주변 등을 어루만지는 성행위에 속한다. 주로 상대방에게 성적 쾌감을 주기 위해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성적인 애무를 한국어로는 ‘전희(前戲)’라고도 한다. 전희로서의 애무는 보통 성감대를 중심으로 어루만지며 섹스 이전에 여성의 애액 분비를 증가시켜 섹스의 거부감을 줄여주고 쾌감을 배가한다.
원래는 평상시 애무와 같이 사랑의 의미가 담긴 어루만짐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으로, 즉, 부모가 자녀를 안아주는 등 성과 관련 없는 어루만짐도 포함되었다가 일반적인 좁은 의미로 섹스 파트너에게 행하는 성적(性的) 의미가 담긴 어루만짐만을 뜻하는 표현으로 변하였다. 섹스 도중의 행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연인끼리의 가벼운 스킨십도 애무에 해당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넓은 의미의 애무와 아주 비슷하게 매우 많이 사용되는 말이 ‘스킨십(skinship)’인데,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여 인간 간에 신체를 접촉하는 일을 말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킨십은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영어로 표현하려면 holding hands(손을 잡는 것), hugging(안는 것), petting(쓰다듬는 것) 등이 있다. 스킨십이라는 말이 성관계를 암시하는 은어로 쓰일 때도 있다. ‘남자친구가 스킨십 때문에 나를 만나는 것 같다.’ 등과 같이 성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하기 어려운 경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사용한다.
연인 사이에서 애무는 서로 신체적으로 매우 가깝게 밀착하여 상대방의 체온과 체취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섹스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고 연인과의 정서적인 친밀감을 더욱 높일 수 있다. 포옹(抱擁) 등의 스킨십은 잠시나마 기댈 곳이 생겼다는 안정감과 설렘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스킨십은 연인 혹은 가까운 사이의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어릴 때 부모의 스킨십이 부족한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산만해지는 특성을 보이기 쉽다. 또 갑자기 짜증을 부리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아이가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스킨십을 하면서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이성 간의 스킨십은 가히 초스피드로 개방적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지 10분 만에 포옹하고 춤을 추며 섹스까지 이어진다. 보수적이었던 옛날에는 1년을 만나도 키스도 못 하고 손만 잡고 다녔다. 또한 학교 교칙에 이성 간의 스킨십을 벌점으로 매겨 처벌받았고, 남녀 학생 간의 성관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성관계는 사실상 퇴학이었다. 이슬람권의 경우 코란에 가족을 제외한 이성 간의 스킨십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전신을 가리는 옷을 입고 생활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이성 간의 스킨십은 제한하고 있지만, 동성 간의 스킨십은 매우 활발한 나라다. 한국 사람들은 서구권 국가들이 스킨십이 많고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구권에서는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만 인사로 스킨십을 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가 아니면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친해지면 거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동성 간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한다. 어깨나 등을 두드려 주기, 어깨동무나 백허그 하기, 등이나 목 안마 해주기, 서로 손 잡고 다니기 등 서양에서는 동성애자들이나 할 만한 행동을 쉽게 한다. 특히 여자끼리는 더욱 심하다. 처음 외국인들이 와서 보고 한국은 동성애자들이 너무 많다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 좀 적응이 되고 나면, 한국 사람들은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한다고 부럽게 생각하기도 한단다.
애무가 가장 강조되는 두 분야가 육아(育兒)와 연애 및 결혼 생활이다. 육아에서 껴안거나 기타 신체 접촉 행위로 인해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밀착되고 깊은 애정의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킨십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려서 받지 못한 스킨십의 사랑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성이나 연인을 애무와 섹스의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특히 아시아권의 우리나라는 유독 어려서 포옹과 같은 부모의 스킨십에 관해 인색하다. 만약 어렸을 적 부모님의 포옹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부모님의 포옹과 같은 스킨십 사랑을 자주 받고 자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간단한 스킨십과 같은 사랑 표현에 익숙해질 것이다.
연애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애무 역시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부드러운 것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고 늘 이성과의 애무를 꿈꾼다. 연인과 부부 사이에 섹스로 대표되는 성 접촉이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애정 표현 스킨십은 필수적이다. 성적인 애무는 엄청난 자극과 쾌락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런 자극과 쾌락은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는 약해지고 무감각해지는 날이 오게 된다. 권태기와 섹스리스 부부가 생기는 이유다. 우리나라 부부의 셋 중 하나는 섹스리스 부부라 하지 않던가. 애무가 강한 자극과 쾌락을 주는 섹스의 전희쯤으로만 여기고 쾌락의 궁극적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애무는 사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좋은 수단이다. 우리는 다양한 스킨십을 통해 말이나 다른 행동으로 느낄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더욱더 밀착된 관계의 방증이다. 애무나 스킨십 모두 마음의 표현 수단임을 잘 알고, 사랑의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느낌이어야 한다.
스킨십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이더라도 매우 주의해야 한다. 나만 좋고 사랑한다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것은 아이한테도 가려서 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성추행범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시대다. 연인 사이라고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 혼자만 부정을 내숭이나 긍정이라 착각하며 깊은 스킨십을 시도하다간 잡혀가기 딱이다. 싫다면 싫은 거지 튕기는 것이 아니다. 애인 관계라도 서로 동의하에 스킨십이 이루어질 때 좋은 감정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상대가 누구이든 진정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스킨십도 상대가 편안하게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접촉부터 시작하여 신뢰가 깊어지면 깊은 애무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모두 주어도 부족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미덕을 발휘해야 행복하고 황홀한 애무에 도달한다.
애무를 포함한 스킨십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우며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의 소통 수단이 되고 쌓였던 감정을 단숨에 풀어줄 수 있는 묘약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개구리가 피부로 숨을 쉬듯 우리 인간도 피부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스킨십, 애무, 섹스 등은 모두 피부 접촉을 통한 인간의 숨쉬기와 같다. 그만큼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을 그리워하며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여 마음의 욕구도 중요시하지만, 부드러운 감촉을 탐하는 몸의 욕구를 너무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맘’과 ‘몸’, 글자의 구성도 같지 않은가? 맘과 몸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다. ‘눈은 보기 좋은 것은 좇고, 귀는 묘한 소리에 밝으며, 코는 아름다운 향기를, 혀는 맛 좋은 음식을, 그리고 살갗은 보드라운 것을 느끼고 싶어 한다.’라고 했다.
부디 스킨십과 애무로 대표되는 몸의 행복이 쾌락이라 평가절하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십분 활용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