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소설 [나는 무늬]
장편 소설 [나는 무늬]
설민
김해원 장편소설 [나는 무늬] (낮은 산 출판).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피의자 신문조서가 나온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궁금하여 책장을 넘겼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문희가 할머니와 같은 날 죽은 족발집 아르바이트생의 뺑소니 사건을 파헤치고 함께 해결하며, 친구를 사귀어 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미성년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적이었지만 그들은 힘을 합쳐 사건의 경위를 찾아내고, 급기야 뺑소니로 죽은 이진형의 집까지 찾아가 유족에게 오토바이를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겨 준다. 이렇게 이진영의 누명을 벗기는 과정에서 문희가 명예훼손 피의자가 된 것이다.
인생의 전개가 만족하든 말든, 가죽을 남기든, 이름을 남기든 결국 사람은 소멸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이영심 씨. 손녀는 그녀를 객관화해서 불렀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할머니. 그 할머니 숨이 자신의 우주라서 뇌출혈로 입원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문희가 안쓰럽다. 슬프지만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아이의 심정이 먹먹하게 느껴진다.
소리에는 질량이 없어도 숨소리에는 무게가 있다. 숨의 무게는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와 비례한다. 할머니에게 잡지책 기사를 읽어주는 게 할 일이었던 문희가 쓰러진 할머니를 보며 전에 보았던 콜로라도 닭이나 우산 아카시아가 보여 준 생명의 끈질긴 힘을 믿고 싶었다. 믿음의 다른 말은 열망이다. 문희는 열망의 연관어가 허망이라는 것을 할머니 숨이 사그라진 뒤에야 깨달았다.
죽음을 애도하는 데는 절차가 있었다. 치료비를 정산하고,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까지 슬픔을 보류해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쉽게 납득했다. 할머니는 11년 동안 문희의 우주였고, 우주가 소멸할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없는 세상, 응급실 밖은 고작 이틀 만에 다른 세상에 되었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세상으로 선뜻 나갈 수 없었던 문희가 도피처 같은 화장실에 갔을 때 ‘은수’를 떠오르게 하는 파랑 패딩을 만났다. 그 애는 혼잣말처럼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이야기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 응급차가 너무 늦게 왔다고. 경막 외 동맥 파열에 두개골이 골절되어 죽은 아이가 열일곱 살이고 이름이 이진형이라고. 문희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하여 사고 난 아이가 아는 애냐고 물었더니, 뺑소니차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그 장면을 목격했고,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너무 늦게 신고했다고 하며 울었다.
문희는 우연히 영안실 밖에서 말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그 아이가 오토바이를 훔칠 애는 아니라는)를 듣고는 파랑 패딩이 말한 열일곱 살, 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 이이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문희는 괴리감을 느낀다. 어처구니없게도 배가 고프고, 졸리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한다. 문희가 앞으로 이제 다시 어떤 일상을 마주하며 살아갈지 걱정되었다. 할머니의 우주 안에서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문희가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문희의 몸은 사회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과 단절된 아이였으니까.
65년을 산 할머니가 한 줌의 가루로 변하는 시간, 그 시간을 가늠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끔찍한 화장터에서 다시 만난 파랑 패딩. 문희는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파랑 패딩이 다니는 학원으로 찾아가 만나 친구가 된다. 그 둘은 뺑소니로 죽은 이진형이 진짜 족발집 가게 주인이 하는 말처럼 오토바이를 훔쳐 운전한 거라는 말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누명이라면 죽은 사람도 억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파란 패딩은 오사강이라는 친구를 만나기로 한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파랑 패딩은 토마토 기러기랑 같은 윤지윤이라고 소개를 하고 문희라고 소개를 하자 무늬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들은 함께 힘을 합쳐 뺑소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동분서주한다. 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김태주를 통해 족발집 상황을 알아보고 오사강 주변의 인맥으로 편의점 앞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이진형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가를 추적해 간다. 결국, 그 종착지가 숲 속 낚시터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날 그곳 손님이 족발을 주문했는지 SNS를 찾아내며 결재 명세까지 확보한다.
활발하지만 부모의 지나친 기대에 부응하느라 힘겹게 맞아가면서까지 참아내는 윤지윤, 결국 사건의 실마리를 찾느라 분주하게 나가는 딸에게 나가면 머리를 밀어 버리겠다고 하자, 자기 손으로 머리를 자르고 나오는 과감함까지 보인다.
증거를 가지고 족발집에 가자 그 사장 엄마이자 할머니의 지인인 박성자 씨의 살팍진 볼이 실룩거리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의 물불 가리지 않는 분노가 절정으로 치닫자 문희에게 죄 없는 사람 누명 씌우는 것이 죄라며 제 자식 죽이려 한 어미한테 뭘 배웠겠냐며 징글징글하게 독한 핏줄이라고 독설을 내뿜는다.
문희는 그날 그 여름 일곱 살의 아이로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 문희를 찾아 나선 친구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은수 엄마가 놀이동산 매표소에서 일해서 가끔 그곳에서 놀았는데. 은수랑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로 해서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가 준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고. 너무 오래 자서 놀이공원에 못 가게 될까 봐. 엄마랑 같이 자다가 깬 문희가 거실로 나와 잠이 들었는데 밤새 연탄가스로 인해 엄마가 죽었다고. 자신이 잠시 일어난 밤에 엄마를 깨웠다면, 아니 연탄불을 피운 안방 문이라도 열어 놓았다면 엄마가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안방 문을 열고 한 말이 엄마, 나 놀이공원 가야 해요, 라니 문희가 그날 이후로 울지 못했다고 고백을 한다.
첫 설렘이라고 기억하는 일곱 살 때 은수가 놀이공원에 같이 가자고 한 그 여름날. 문희는 자신이 설레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날 아무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날 이후 문희는 설렐 적마다 두려웠다. 겨우 일곱 살. 나가 놀고 싶었고, 엄마하고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고, 미술 학원에서 그려 온 그림을 엄마한테 보여 주고 칭찬받고 싶었다. 문희는 엄마가 좋았는데, 엄마는 나한테 그러지 말아야 했다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죄책감과 슬픔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마음의 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눈물을 독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드디어 증거를 찾아낸 문희, 지윤, 사강, 태주 이 넷은 이진형의 집에 찾아가 유족들에게 위로하고 이진형이 오토바이를 훔친 게 아니라 배달 갔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사건을 해결하고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김태주가 뺑소니 사건을 그라피티로 그린 그림을 문희가 SNS에 올리면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하게 된다.
한 사람의 시작은 어디일까. 또 끝은 어디일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애쓰는 십 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따뜻하다. 각자의 사정과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대응했다는 것이 대견하다. 아니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상에 치여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인지심리학 실험 중 성격이 아니라 바쁜 게 죄악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못돼 서라 아니라 바쁘면 주변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정한 이름표 말고 나답게 살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는 문희와 그 친구들의 행보가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