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

글레이 키컨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설민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

글레이 키컨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설 민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또 이렇게 매운 날이 닥칠 줄 누가 알겠냐며 추위와 삶의 고달픔을 한탄한다.

이 소설 속의 묘사는 사실적이면서도 암울하다. 마치 흐리고 추운 해 질 녘 겨울 풍경 같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몸을 녹이며 신세 한탄을 하면서도 그럭저럭 이렇게 쉴 곳이 있음에 위안을 얻는 마음이랄까? 사소한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작은 감사가 입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소설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무언가에 짓눌리는 무게감.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말들을 함축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이 소설은 암시와 비유가 담긴 시 같다. 책에 담긴 묘사는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다. 겉으로는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 그러기에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위태롭다.

사회 약자를 돕겠다는 의미로 건립한 아일랜드의 모자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는 저자의 서문을 보면서 위선적인 성직자들의 태도가 떠올랐다.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한 모든 사람들이 위선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더 도드라지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선동하고 교화하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에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거짓을 덮으려면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한다.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에서 발췌한 글에서도 자유, 평등과 모든 이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결의를 천명하지만 현실을 이와 다르다.

1985년 아일랜드 작은 도시에 사는 빌 펄롱 같은 사람들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아야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체감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남겨서 앞날의 재앙에 대비할 수 있으면 기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전 한 닢, 마음 한 켠이라도 내주는 것이 사치인지 모른다.


빌 펄롱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파는 석탄 목재상이다. 그는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스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그녀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내에서 몇 마일 떨어진 큰 집에 혼자 사는 개신교도였다.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그녀는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 줬다. 펄롱이 자라자, 자식이 없는 미시즈 윌슨은 그를 돌보며 잔심부름도 시키고 글도 가르쳐주었다. 농장 일꾼인 네드도 같이 살았는데 집안에 불화가 거의 없었고, 농장은 울타리도 잘 쳐져 있고 관리도 잘되고, 빚진 돈도 없었기 때문에 이웃과 부딪칠 일도 없었다.

학교에서 펄롱은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놀림감이 되어 외투 뒤쪽이 침 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온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집에서 자란 덕에 애들이 조금 봐주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죽고 말았다. 펄롱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결국 듣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두 해 기술학교에 다니다가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건실한 개신교도 특유의 습관을 들여 믿음직했고 일찍 일어났고 술은 즐기지 않았다. 지금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시내에 산다.

가끔 펼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또 언제나 쉼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면서도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한다. 가끔 펄롱은 자기도 모르게 나이 많은 남자를 쳐다보면서 닮은 구석이 있는지 살핀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했다.

수녀원을 맡아 관리하는 선한 목자수녀회는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도 운영했다. 또 수녀원에서는 세탁소도 겸업했다. 직업학교에 있는 여자들은 학생이 아니라 타락한 여자들이어서 교화를 받는 중이라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거라고 했다.

지저분한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부엌 전체와 안에 있는 물건들 전부 얼룩 한 점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배당. 그곳에서 본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 여남은 명. 그들은 펄롱을 보자마자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놀랐다. 그들 중에 신발을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엎드려서 구식 라벤더 광택제 통을 놓고 걸레로 둥근 모양을 그리며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검은 양말에 끔찍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아이는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났고 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깎여 있었다. 강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애원을 하던 한 아이는 펄롱이 대꾸가 없자, 그냥 물에 빠져 죽고 싶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지폐를 세는 수녀를 보고 너무 오래 제멋대로 살아온 고집 센 조랑말을 떠올리던 펄롱이 수녀원에서 본 것을 아일린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잠옷의 자개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우리가 가진 것을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펄롱은 안다. 수녀원의 보호라는 명목아래 있는 아이들이 원해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딸 캐슬린이 펄롱의 일을 돕고 있자, 그는 이렇게 묻는다. 여기 아저씨들이 나 없는 동안 너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는지.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 새벽에 석탄 광 문을 연 순간 그 안에 여자 아이가 있었다. 하룻밤 이상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는 배설물이 있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데다가 머리가 엉망으로 깎여 있었다. 그 아이는 그들이 14주 된 아이를 데려갔다며 젖을 누가 주냐고 물었다. 석탄광에 갇혀있던 여자 아이를 수녀가 데리고 갔다.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는 여자 아이에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펄롱이 물었다.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친절을 마주했을 때 그러듯이.

수녀는 엔다라고 불렀지만 펄롱이 원래 이름을 묻자 세라 레드먼드라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 이름하고 같다고 말한다.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네드한테 가보겠다는 펄롱. 그에게 가며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는 이야기를 회상했다. 하느님만 아시겠지라는 대답 앞에서 막막했던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본능인가 아닐까 싶다.

네드가 있는 집에 가자 어떤 여자가 그는 이제 여기 안 산다고, 보름도 더 전에 폐렴에 걸려서 병원에 갔고 지금은 어느 집에선가 요양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네드가 삼촌이냐며 닮았다고 말한다. 펄롱은 여자가 한 말, 닮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며 생각 속에 불을 지폈다. 생판 남을 통해서 알게 되다니.

펄롱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똑바로 보며 네드와 닮은 데가 있는지 찾았다. 닮은 데가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했다. 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그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드는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 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네드는 펄롱이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그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것이다. 가까이 있었기에 알기 못하는 것들은 우리 인생 도처에 깔려있다. 그것은 가장 보기 어려운 법이다.

펄롱은 그럼에도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그를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아이가 부탁한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태연하게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이발을 하고 아내에게 선물할 구두를 사며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펄롱은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낸다고. 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진 펄롱은 사냥감을 노리며 배회하는 야행성 동물이 된 듯 어둠과 적막 속에서 수녀원 바깥쪽을 따라 돌며 둘러보았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 진입로를 따라 올라갔다. 펄롱은 석탄 광 문으로 돌아가 빗장을 당기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이름을 말했다. 펄롱은 이발소에 있을 때 상상했었다. 지금은 문이 잠겨 있을 거라고, 다행히도 아이가 그 안에 없을 거라고. 아니면 어떻게 할지, 아이를 업고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가능할지. 하지만 모든 게 펄롱이 두려워하며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다만 아이가 이번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펄롱의 외투를 순순히 받아 들었고 기꺼이 부축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

펄롱은 자기 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꼈다. 다시 한번 아이를 사제관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자기 고집대로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가는, 흑맥주같이 검게 흐르는 베로강처럼 행동한다.

시내로 들어오자 토하는 아이에게 ‘다 게워내. 속에 든 거 시원하게 비워내’라고 펄롱은 말을 한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로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마음의 빚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이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의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펄롱은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 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때로는 거짓이 더 사실 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199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이 시설에서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적게 잡으면 만 명이고 3만 명이 더 정확한 수치일 것이다. 이곳에서 일한 여자와 아이들 가운데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거나 노역을 인정받는 이는 거의 없다. 많은 여자가 아기를 잃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많은 이들은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했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 하에 착취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서 눈을 돌린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빌 펄롱의 내면에도 차마 하지 못한 사소한 일들, 쉽사리 입 밖에 내지 못한 모호한 말들이 꽉 차서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지경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무엇일까?

늘 가까이 있지만 감사함을 모르는 일들. 작고 소박한 사랑이지만 그 안에 숨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크기. 작은 배려와 관심,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러한 것들이 사소하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관심과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이 베풀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빌 펄롱은 그나마 환경적인 혜택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가난하고, 비록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라났지만 미시즈 윌슨의 보살핌과 엄마와 네드의 뒷바라지가 아주 큰 행운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 버팀목이 바른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과 용기, 결단을 내리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성직자보다도 성스러운 마음을 낸 펄롱이다. 고귀한 성품을 가진 성직자도 있겠지만 개중에 어떤 이는, 배려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기에 이해심이 부족하다. 자신만 안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힘든 상황에서 구해낸 펄롱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을 지지한다고. 힘들지만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고. 혼자서는 힘들 수 있지만, 서로 돕다보면 새로운 방법이 나올 거라고. 춥고 어두운 겨울밤. 어느 해보다 더 슬프고, 더 뜻깊은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라고. 따스한 불빛이 당신의 마음에 빛날 거라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춥고 침울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한 날씨처럼 차마 하지 못한 사소한 일들, 쉽사리 입 밖에 내지 못한 모호한 말들을 눈 결정처럼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산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