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가 미술 학원이 끝나고 공원으로 신나게 달려가고 있다. 엄마가 오늘 태욱이와 태욱이 형인 태희 형과 같이 놀 수 있다고 미리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태희 형은 5학년이다. 무서울 때도 있지만, 같이 놀 때 정말 재미있어서 주인이는 태희 형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주인이가 신나게 공원으로 가고 있을 때 문구점에서 나오는 예준이를 만났다.
"어! 최주인! 어디가?"
"어? 예준아! 나 지금 공원 가고 있는데?"
"아! 그래? 그럼, 나랑 같이 놀자!"
"어. 근데, 오늘 나 태욱이랑 태희 형이랑 놀 건데."
"나도 같이 놀자!?"
"아, 그런데 예준아, 진짜 미안해. 내가 너랑 진짜 놀고 싶은데, 태욱이랑 있으면 너랑 잘 놀아줄 수가 없어. 오늘은 태욱이랑 놀아줘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아, 그래?“
'태욱이랑 있을 땐 왜 같이 못 노는 거지? 태욱이가 내가 주인이랑 놀면 속상해 하나?'
"응! 잘 가! 다음엔 내가 진짜 너랑 놀아줄게!"
주인이 본인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예준이와 같이 노는 게 싫다. 예준이가 같이 놀게 되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예준이와 헤어지고 공원에 도착한 주인이는 엄마와 태욱이 엄마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응. 인사도 잘해. 저기 잔디에 태욱이랑 태희 형아 있어. 가서 같이 놀아!"
주인이는 태욱이 엄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갔고, 주인이 엄마와 태욱이 엄마는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만나면 저렇게 좋아서 논다. 하하하. 그런데 나 솔직히 요즘 태욱이 피한 거 알지? 주인이가 태희랑 놀고 오면 나쁜 말도 많이 배워오고, 태욱이도 너무 성격이 욱하고 그래서 내가 요즘 못 놀게 했어."
"그랬어? 어쩐지. 요즘 애들 잘 안 만나더라."
"응. 그랬어. 다른 엄마들도 요즘 태욱이 너무 화내서 애들이 힘들어한다고 그러더라. 저번에 태욱이 학교에서 서준이 때렸잖아. 그것도 이미 다 소문났지. 나도 고민하다가 얘기하는 거야. 나 이렇게 얘기해도 태욱이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지? 다른 사람들처럼 뒤에서 딴소리하고 막 그러는 거 난 싫고, 언니한테 이렇게 딱 얘기하는 거야."
"나도 요즘 걱정이야. 그래서 엄청 혼도 내고, 사과도 시키고. 요즘 계속 지켜보고 있어."
"진짜 잘 지켜봐. 태욱이 저러다 큰일 낸다! 욱해서 누구 하나 때리면 언니! 요즘 그냥 매장이야. 그리고 태희랑 태욱이 너무 맨날 붙여 놓는 거 아냐? 서로 친구 생활이 있는데, 둘이 매일 같이 다니는 것도 안 좋아! 아무리 형제라도! 각자 친구랑 놀아야지!"
"그런가? 둘이 워낙 사이가 좋아서. 그리고 태욱이가 형 말을 잘 듣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 봐."
"그러니까! 언니! 더 문제지! 태욱이도 형한테서 독립해야지!"
이렇게 주인이 엄마의 조언이 계속되는 중에 이한이와 이한이 엄마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 이한 엄마! 어디 가요?"
"아! 안녕하세요! 태욱이 놀고 있나 봐요! 주인이도 같이 있나 보네. 저희 이한이가 뭐 좀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학원 상담하러 갔다가 들어가는 길이예요."
"엄마. 나도 조금만 놀아도 돼? 응?"
"자기도 잠깐 앉았다 가!"
"아. 응. 그럼 이한아 딱 30분만 놀고 가자. 주한이 데리러 가야 해. 아빠랑 저녁도 먹으러 나가야 하고, 알았지?"
"네!"
이렇게 이한이도 주인이와 함께 놀게 되었다. 엄마들도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예준이가 다시 공원을 지나갔다. 이한이가 예준이를 보고 크게 불렀다.
"예준아! 발야구 같이 하자!"
"아! 진짜? 그래!"
그렇게 다 같이 발야구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이는 꼬물꼬물 마음이 이상했다. 예준이가 발야구를 함께 하는 게 얄밉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인이는 예준이에게 1루 수비를 시키며 원을 그려줬다.
"이 원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이 원 안에서 수비를 잘해줘."
"응! 알았어!"
주인이의 그런 행동은 이한이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한 사람은 이한이 엄마였다.
"주인아, 발야구는 움직이면서 수비를 하는 운동이야. 이렇게 원을 그려놓고 못 나오게 하는 규칙은 없어. 그렇게 하면 예준이가 수비를 하기 힘들 것 같아. 주인이가 원을 지워줄래?"
"최주인! 규칙 마음대로 만들면 안 돼! 그럼 다른 친구들이 규칙을 이해 못 해요!"
"네!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그 뒤로 태희 형의 규칙 설명과 함께 신나는 발야구 시간이 이어지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어 모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예준아! 내가 다음엔 꼭 너랑 잘 놀아줄게!"
주인이가 예준이에게 속삭였다.
"최주인~! 친구끼리 '놀아줄게'라고 말하지 마. 너가 놀아주는 거냐? 같이 노는 거지? 니가 무슨 형이냐?"
그 얘기를 들은 태희 형이 주인이에게 큰 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태희 형의 핀잔을 들은 주인이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나는 그냥 놀아준다고 한 거거든? 내가 놀기 싫을 때도 난 원래 놀아주거든?"
"놀기 싫으면 놀지 마라! 니가 뭔데, 놀아준다고 생색내냐?"
"형은 진짜 매일 나쁜 말만 하고! 화내고! 저번에 나한테 욕도 했으면서! 진짜 나빠! 그러니까 다들 형을 싫어하지!"
이 대화를 들은 이한이 엄마는 아이들 앞에서 본인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 옆의 주인이 엄마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태희가 마음에 안 든다.
- 주인이는 평소 함께 잘 놀던 예준이와 노는 게 왜 불편했을까요?
주인이는 여왕벌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 항상 주인공이어야 하고, 항상 함께 있는 친구들이 본인을 가장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당연히 힘들 겁니다. 오늘 내가 주인공을 하지 못하거나, 다른 친구들끼리(위 상황에서는 태욱이와 예준이) 더 마음이 잘 맞아 본인을 제일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질까 봐 불안해합니다. 주인이도 여왕벌 엄마로 인해 상처받고 있습니다.
저학년 담임을 했던 시기에 여왕벌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순하고 약해 보이는 아이를 놀이에서 항상 술래를 시키려고 하거나, 안 좋은 역할을 시켜서 다른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아이였어요. 그럼 다른 친구들은 술래를 안 해도 되고, 하기 싫은 역할을 안 해도 되니 이 아이의 말을 잘 따르게 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만만한 대상을 통제하여, 전체적인 상황을 통제하는 거죠.
교실에서 이런 분위기는 절대 오래 방치해선 안 됩니다. 적극 개입하여 잘못을 단호하고 간단하게 짚어 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지금 일어나는 일이 괴롭힘이라는 걸 알아야 하니까요.
"주인아, 너가 하는 행동은 oo이만 놀이에서 속상하게 하는 것 같은데, 알고 있지? 왜 그러는 거야? 선생님이 oo이라면 지금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이렇게 여왕벌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고, 친구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하진 않아요. 그냥 선생님이 너희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 후 아이들의 놀이에 한동안 적극 개입하여 친구 사이의 올바른 놀이 방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왕벌의 놀이 방법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이라는 것을 생활에서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죠.
여왕벌 엄마의 아이와 내 자녀가 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통제에도 눈치 보며 넘어가 주지 마세요.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벌 아이에게 통제당하는 아이는 얼마나 외롭겠어요.
-주인이 엄마가 태욱 엄마에게 하는 조언 어떻게 보이시나요?
정말 걱정이 되어서 하는 조언처럼 들리시나요? 여왕벌들은 남의 사적인 영역의 선을 잘 넘어옵니다. 예의 없게 훈수를 두고 본인이 다 아는 것처럼 조언하죠.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근거 없는 이유까지 들면서요. 절대 휘둘리지 마세요. 그럴 땐 "당신이 잘 몰라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 까진 이해 할게요. 하지만 이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여왕벌은 당신을 조심합니다. 여왕벌들은 대부분 ‘강 약 약 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