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선화 삶 05화

5화 인생2막

by 단려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에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낯선 교실 풍경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머니~ 잘 오셨어요. 여기는 국화반이에요.”

나는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며, 혹시 자기소개를 해 볼 수 있겠느냐 청했다.

“안녕하세요? 지는 쩌기 시골에서 첫 차 타고 나왔습니다. 글을 쪼개 배워 볼라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수줍은 듯 그녀는 인사를 했다.

첫 수업이 시작되고, 그녀는 삐뚤빼뚤 글자를 써 내려가다 눈물을 훔쳤다.

마음이 쓰여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영감님이 돌아가신 지 두 달 밖에 안 됐어요. 그동안 글자를 몰라도 영감이 다 읽어주고 공과금 영수증도 대신 봐줘서 글 몰라도 어려운 게 없었는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연을 들려주었다.

남편 없이 홀로 지내면서 아무것도 읽지 못하니 답답하고 두려웠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위로했다.

“우리 모두 비슷한 사정으로 여기에 모였어요. 함께 힘을 내서 노력해 봐요.”

그렇게 우리는 한 반이 되어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시골에서 첫차를 타고 오느라 매번 아침 일찍 서둘러야 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빠듯해 늘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런데도 그녀는 매일 내어 준 숙제를 빠짐없이 해 오고 잘 썼는지 공책을 보여주며 확인을 부탁했다.

혼자 공부하다 어려운 글자는 공책에 적어 다시 물어 쓰고 몇 번을 반복해서 썼다. 거리를 지나다 간판이 보이면 글을 읽었다. 잘 모르는 글은 메모를 해 오기도 하였다. 잠 못 드는 밤이면 몇 번이고 글자를 쓰고 소리 내어 읽었다.


두 해쯤 지나자, 그녀는 이제 제법 긴 문장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겁내지 않고 몇 번을 반복해 읽으며 글을 읽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 반찬! ‘반지’할 때 ‘반’ 자네. ‘반찬’할 때 ‘찬’을 써서 ‘찬성’.....”

글을 읽으며 신이 난 얼굴로 또박또박 소리를 내던 모습이 생생하다.

“오늘 문장을 읽어 보실 어머니가 있을까요?"

그녀는 손을 살짝 들며 수줍은 듯 나를 불렀다.

“선생님요! 지가 읽어도 되겠습니까? 글자가 맞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이왕이면 앞에 나와서 읽어보자고 했다.

그녀는 책을 들고 나와 반 친구들 앞에 섰다.

“잘 못해도 용서해 주이소.”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며 머쓱하게 웃었지만 다시 또박또박 글을 읽었다.

밝아진 그녀의 표정은 예전보다 훨씬 당당했고, 반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마음을 나눴다.


그렇게 쌓인 용기가 결국 꽃을 피웠다.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전국 시화 공모전에 선정되었다.

“어머니~ 축하해요.. 이 번 전국 시화 공모전에 어머니 글이 됐어요.

반 친구들은 박수를 쳐 주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하였다. 몇 해를 꾸준하게 공부하시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축하의 의미로 어머니가 쓴 글을 읽어보자고 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글을 읽으니 또 영감님 생각이 나네요. 이제 내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예.”

반 친구들도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훔쳤다.

“영감님이 가르쳐 줄 때는 우찌나 머릿속에 안 들어가는지..... 그런데 이제 글이 보이네요. 글이 읽어집니다. 고맙습니다!”

반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녀는 멋지게 낭송을 하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질문하는 날이 많아졌다.

“선생님요!. 울 손주 동화책에 이렇게 쓰인 글이 나왔는데 우리는 안 배웠어예”

그녀가 책가방에서 빈 종이에 쓰인 글씨를 보여준다.

“뉘엿뉘엿....”

그녀는 요즘 손녀에게 동화책을 자주 읽어 준다고 했다. 그녀가 손녀딸에게 떠듬떠듬 글을 읽어줘도 손녀딸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직 글자를 읽어도 뜻을 잘 모르는 글자도 있다. 그럴 때 영락없이 빈 메모지에 글을 적어 온다.

집에 붙여진 전단지도 공과금 영수증도 글자 하나 빼지 않고 읽고 있다고 한다.

그녀 말대로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설렁설렁 지나가던 글자가 이제야 비로소 나신의 것이 되었다.



그녀의 인생 2막은 글을 깨우치면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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