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선화 삶 06화

6화 함께 걷는 교실

by 단려


아침부터 교실 분위기가 찬기가 돌고 어머님들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코로나 이후 많은 학습자들이 우리 반에 들어왔다.

“작년에 배운 걸 왜 또 배워?”

학습자로 오랫동안 우리 반을 지킨 주택 어머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새내기 학습자들은 서로 눈만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앞문을 열며 힘 있고 청명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분위기가 냉랭한 것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반장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교실의 긴장감을 풀어보려 애썼다.

“선생님! 우리 이야기 한 번 해 보입시더.”

사거리 아파트 어머님이 문제를 직시할 수 있도록 중재를 요청했다. 서로 말은 아끼고 있었지만 반 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반에는 글자를 전혀 깨치지 못한 분과 받침을 잘 못 읽는 새 학습자들이 함께 들어왔다. 반면 우리 반에서 계속 공부해 온 어머님들은 기본글자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새로 오신 학습자는 글자를 배울 수 있다는 설렘으로 왔지만 기존 학습자들은 이미 배운 내용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새 학기가 되어 우리 반에 많은 어머님들이 배정되셨어요. ”

나는 우리 반의 구성원을 차분히 소개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기관에서 학습자들의 학습 수준에 맞추어 반 배정을 했는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고 보니 실제 학습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첫 시간에 나는 기존 있는 학습자들의 개별 면담을 진행해, 수준을 조금 낮춰도 괜찮겠느냐는 동의를 미리 받았다. 새로 들어온 어머님들 중에는 아직 받침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득이 수업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그것이 어제 결정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같은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었다..

나는 학습자들의 갈등과 눈치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어머니! 지금 받침 있는 문장까지 읽을 수 있는 분은 주택 어머님뿐이세요. 어머님이 학습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으니 어머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제 수준을 낮추는 것에 동의를 했지만 내가 없을 때 그분은 반 수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나는 주택 어머님의 양해가 필요했다.

“선생님 요랑 대로 하이소.”

주택 어머님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님요. 우리가 글을 몰라 한이 되어 왔는데 쪼가 이해해 주이소. 글도 모르는데 진도가 하마 저래 나가믄 우찌 글을 깨우치겠십꺼?”

감 골 어머님이 주택 어머님에게 애교를 떨었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따라갈게요.”

사거리 아파트 어머님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한 동안 반 분위기는 눈치를 보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기도 했다.

나는 학습을 두 파트로 나누었다. 새내기 어머님을 위한 진도와 주택 어머님처럼 글을 조금 이해하는 어머님을 위한 심화 학습을 병행했다. 심화 시간에는 주택 어머님이 종종 헷갈려하시는 맞춤법과 글자를 반복해서 쓸 수 있는 짧은 글짓기를 했다. 주택 어머님은 남과 다른 과외를 받는 기분이라 어느새 서운했던 마음을 내려놓으셨다.

“선생님! 두부라고 쓰려면 구두 할 때 그 글자 쓰면 됩니까?”

무촌에서 오시는 어머니가 묻는다. 그러자 감 골 어머님이 갑자기 일어나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흉내를 내어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감 골 어머님은 역시 분위기 메이커셨다.

새내기 학습자들은 문해 학습에 물들어 학습을 하는 방법과 교실의 규칙을 조금씩 익혀나가며 단체생활을 경험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새내기 학습자들이 더듬더듬 받침낱말을 읽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을 소리 내어 한두 줄씩 읽었다.

주택 어머니를 따라가려고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는 학습자도 생기고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서 서로 글자를 묻고 대답을 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올해는 여느 학습자들보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빠른 습득을 보였다.

나 역시 주택 어머님 눈치를 살피느라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며 서서히 풀렸다.


“형님, 일찍 오셨네 예.”

감 골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오는 학습자가 제일 먼저 주택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우님도 아침 잡숫고 오셨능교? 이제 날이 제법 선선합니다.”

아침마다 우리 반은 정겹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누구는 지난밤에 삶아놓은 감자를 내어 놓기고 요구르트도 한 뭉치 꺼내 쉬는 시간에 먹겠다고 사 오신다.

한 지붕 자매처럼 서로를 아끼며 간밤에 이야기도 나누고 학습을 열심히 하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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