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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29. 2024

역사와 풍광의 콜라보레이션 "서천(舒川)" 주유기

Chapter 13. 옛 한산(韓山)을 위한 오마쥬 그 3, 소곡주갤러리

우리네 선조분들, 술 깨나 즐기셨던 것 같다. 물론 술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으셨다. 술을 마시면서 또는 마신 후에는 으레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곤 했던 것을 보면, 한마디로 '흥'이 대단하셨다. 오죽하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라는 의미를 가진 음주가무(飮酒歌舞)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턱 하고 등재되어 있겠는가?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나라가 그들의 국어사전에 술과 노래와 춤을 한데 묶은 단어를 가지고 있느냐 말이다.   


솔직히 술만 해도 그렇다. 독일 친구들이 술을 가지고 폼을 잡아대지만, 사실 그들이 자랑하는 술이라고 해 보았자 기껏해야 맥주 정도이다. 그리고 그 종류라고 해보니 크게 2가지, 즉 Pils와 Weizen이 전부이다. 물론 프랑스 친구들도 술이라면 빠지지 않고 끼어들지만 (포도의 품종을 달리할 뿐) 그 역시 와인 한 가지이다. 아, 술 이야기라면 스코틀랜드 사람들도 위스키를 들고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네 전통주들은 술의 기본 재료 자체를 완전히 달리한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진달래꽃으로도 만들고, 솔방울로도 만들고... 물론 술을 빚는 방법을 가지고 분류하자면 아예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워낙 그 종류가 많다 보니 전통주란 이름을 내걸고 장난을 치는 놈들이 생겨났고, 그런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국가와 시도차원에서 34개의 전통주를 지정하여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정된 전통주들 사이에도 그 지명도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오늘 내가 이야기하는 한산 소곡주는 (술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꼽는다면) 언제나 TOP 5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오늘 이야기하는 한산 소곡주의 제조방법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산 소곡주는 우선 그 역사가 다른 전통주들과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깊다. 김정은이 왔을 때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셨을 때 만찬주로 쓰였던 면천의 두견주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두견주는 복지겸이 활약했던 서기 900년대에 - 그것도 약간 야사(野史)에 가까운 이야기에 근거한 -  만들어졌다고 하니 기껏해야 1100년의 역사를 가질 뿐이다. 그에 반해 소곡주는 명백히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잘들 알다시피 지금의 한산(서천) 땅을 처음으로 지배했던 나라는 백제였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記)에는 무왕 37년(635년)에 '소곡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뚜렷이 적혀있다.  아, 다인왕 11년(318년)에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마신 술이 소곡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추정에 따르면 소곡주의 역사는 무려 1700여 성상을 헤아리게 된다. 소곡주 역사에 관하여는 아래 사진 참조.        

한편 소곡주는 다른 술들과 달리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특이한 애칭(?)을 갖고 있다. '앉은뱅이 술'이라는 애칭이 그것인데, 이런 애칭을 갖게 된 배경에는 슬프고도 웃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잠시 소개해 보면... 옛날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던 선비께서 소곡주 맛에 취해 봇짐도 풀어 제치고 술을 마시다 시험 날짜를 지나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곡주. 맛있고 순하지만 근본적으로 소곡주도 술이다 보니 많이 마시게 되면 취기가 오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만취상태가 되어서 앉은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의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 이야기 또한 이를 경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곡주는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술 깨나 좋아한다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이쯤 되면 소곡주를 빚어내는 마을 어딘가에 박물관 하나쯤은 들어서야 마땅할 것 같은데, 역시... 있다. 그것도 "한산 소곡주 갤러리"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갖고, 이렇게 말이다.

"한산 소곡주 갤러리"는 단층의 건물로 그리 크지 않다. 이것이 전면부 사진이고,  

이것이 측면 사진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자그마한 규모의 건물과 "한산 소곡주 갤러리"라는 이름 때문에  이를 두고 내가 '박물관' 어쩌고 하는 것에 불만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도  "한산 소곡주 갤러리"를 박물관이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서면 한산 소곡주의 역사도 알게 되고, 지금 시판되고 있는 소곡주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알게 되고, 소곡주를 시음도 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소곡주를 직접 빚어보는 체험 신청도 할 수 있다. 그러하니 명칭과 상관없이 실질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한산 소곡주 갤러리"는 박물관이라고 칭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산 소곡주 갤러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백제가 멸망한 이후 백제의 유민들이 망국(亡國)의 한을 소곡주로 달랬다"는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이어서 과거 보러 가던 선비의 이야기를 재현해 놓은 것이 나오는데, 그 앞 쪽으로는 여러 종류의 소곡주 병들이 전시되고 있다.

현재 한산에서 소곡주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곳은  6-70여 곳에 이른다고 하는데, 소곡주를 제조하는 분들 모두가 국가가 지정한 명인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소곡주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데, 그래서 "한산 소곡주 갤러리"에는 그분들이 위치한 곳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이 만든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방문객들에게 매주 다른 종류의 소곡주를 맛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여기가 시음대인데, 비록 제품마다 제조과정이나 맛을 조금씩 달리 하기는 하지만 소곡주 특유의 '달달하며 순한 느낌'은 거의 공통적인 듯하다. 

그 많은 제품 중 어느 것이 제일 맛있는지는 이방인인 나는 알지 못한다. 더욱이 본디 (술)맛이란 것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게 마련이니 어느 것이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다만 술을 좋아하는 서천 분 중 하나는 당신이 마셔 본 것 중에서는 이것이 제일 괜찮다고 하면서 이 브랜드를 내게 권해주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두세 해 전 추석명절에 대통령이 (소곡주 명인이 만든) 소곡주를 보내 줘 맛본 적이 있는데, 명인의 손길이 닿아 그런지 당시에 마실 때 보통의 것보다 좀 더 맛있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아, 소곡주를 판매하는 곳에 가면 아래 사진 속의 소곡주 말고, 증류과정을 거친  "소곡 화주"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통상의 소곡주보다 훨씬 비싸다(어림잡아 3배쯤). 그렇지만 소곡화주는 달달함이 옅어지고 깨끗함이 강해서, 40도를 넘는 독주이지만 뒤끝이 깨끗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한산 소곡주 갤러리" 한복판에는 이렇게 널찍한 평상(아니 사랑방인가?)이 만들어져 있다. 다른 분들 사진 중에는 자그마한 반상이 저 평상 가득히 놓여 있는 것이 있던데, 내가 찾았을 때에는 보다시피 휑했다. 앞쪽에 보이는 인형은 소곡주 마스코트인데, 왼쪽의 붉은 것은 '화비' 그리고 오른쪽의 노란 것은 '누룩'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누룩은 그 의미가 분명한데, 화비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모르겠어. 관련기사 등을 검색해 보아도 이름만 소개되어 있고, 막상 그 의미는 설명이 없다. 인형 모양만을 보면 '화비'는 불도깨비가 아닐까 싶기는 하다.  

아래 사진은 마스코트 인형이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소곡주 빚기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체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안내판을 참조하기를... 

 "한산 소곡주 갤러리"가 박물관의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전시물인데,  소곡주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는 여러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내가 들어본 것은 사실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 이 책 한 권뿐이다. 

산림경제에 관하여는 아래 사진 참조. 

산림결제 중 소곡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부분은 이렇게 펼쳐져 전시되고 있는데,  오른쪽 페이지 맨 끝에 약간 두꺼운 글씨로 쓰인 '소곡주'라는 제목이 보인다. 그리고 왼쪽 페이지에 그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어. 지금 시판되고 있는 소곡주들을 보게 되면 하나같이 소곡주를 한자로 이렇게 쓰고 있는데, 산림경제에는 소곡주의 '소'가 素가 아니라 小로 되어 있다. 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소곡주가 "누룩을 적게 넣은 술"이란 뜻을 갖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소곡주를 '素穀酒'라고 써 놓은 것도 보이던데, 이런저런 이유 내지 의미 때문에 한자표기가 달라진 것이라 생각되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에 관하여는 통일이 필요해 보인다. 

산림경제 이외의 다른 책들에도 소곡주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하던데, 그들 책은 책의 제목부터 금시초문이다. 

 "한산 소곡주 갤러리" 앞에 넓은 광장이 있다. 테이블이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고, 의자도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한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하는 곳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앞으로 두 손으로 술잔을 움켜 쥔 모습의 조각작품이 있다. 술을 받은 것인지, 아님 (비록 뒤집어 있기는 하지만) 아래쪽의 검은 사발에 술을 부어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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