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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Mar 29. 2024

안정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IT 강국 "에스토니아"

Chapter 5. 발트해의 보석, "탈린(Talin)". 그 첫 번째.

# 첫째 마당: 개 관



"탈린(Talin)"을 소개하는 책자나 티브이 프로그램 등을 보면 탈린이란 이름 앞에 도시에 붙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아낌없이 붙이고 있다. 이글의 제목에서 쓰고 있는 "발트해의 보석, 탈린"이란 표현은 그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물론 탈린은 그러한 찬사를 받을만한 여러 요소를 갖고 있다. 바다(발트해)를 끼고 있고, 중세 성곽에 둘러싸여 있으며, 교회와 광장이 잘 어우러져 있는 등 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아래 사진은 내가 올레비스테 교회(Oleviste Kirik)의 첨탑에 올라 찍은 것인데, 이런 사진을 보게 되면 그 누구라도 왜 탈린이 발트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탈린... 구시가지 또한 상대적으로 상당히 넓고, 그 안에 펼쳐져 있는 골목길도 아름답다. 결론적으로 규모와 아름다움 등을 종합해 볼 때 탈린은 (적어도 발트 3국의 도시들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도시라는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탈린은 사람을 압도하는 그 무엇 즉 사람들의 머릿속에 탈린이라는 도시를 깊이 각인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볼거리는 없고, 그저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질 뿐이다. -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 유럽의 유명하다는 관광 도시들의 상당수가 대부분 이런 식이기는 하다. - 그러하니 탈린 관광에 나서면서 "발트해의 보석"과 같은 표현이나 떠도는 이야기에 사로잡혀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니 말이다. 


자, 이제 지도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탈린을 이야기해 보자. 아래 지도 중앙에서 왼쪽으로 초록색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짙은 갈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 보일 텐데, 그 부분이 바로 탈린의 구시가지이다. 그런데 구시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시가지가 다시 왼쪽의 자그마한 덩어리와 오른쪽의 좀 커다란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왼쪽이 고지대, 오른쪽이 저지대인데, 보다시피 오른쪽의 저지대가 훨씬 넓고 볼 만한 것들도 저지대 쪽에 몰려 있다. 그러하니 탈린의 구시가지 관광에 나서는 경우 저지대와 고지대를 둘러보는 시간은 8:2 정도로 배분하는 것이 적정비율이 될 것이다. 



## 둘째 마당: 교회와 성당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한다는 것, 그것은 교회와 성당을 둘러본다는 것과 거의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탈린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교회와 성당을 빼고 나면 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탈린 이야기는 교회와 성당 등을 먼저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아, 탈린 구시가지에 있는 교회와 성당들은 각기 그만의 특징과 의미를 갖고 있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이야기하기가 적당치 않다고 생각되어 각각 별도로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1. 올레비스테 교회


탈린을 소개하는 책자는 붉은 벽돌집과 교회의 첨탑 등이 어우러진 탈린 시가지의 사진을 첫 페이지에 올려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보면 예외 없이 높은 첨탑을 가진 교회가 그 중앙에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올레비스테 교회(Oleviste Kirik)"이다. 


먼저 중앙제단으로 이어지는 통로인데, 

샹들리에 쪽으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비로소 샹들리에에 가려져 있던 중앙제단 위 성화의 모습이 온전히 보인다.

교회 뒤편의 모습인데, 상층부에 파이프오르간이 보인다. 

별도의 예배당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공간인데, 위치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에 대하여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조금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올레비스테 교회가 유명해진 것은 사실 이런 교회 내부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올리베스타 교회는 16세기에 축조될 당시에는 항해하는 배들의 이정표 역할을 할 정도로 세계최고의 높이를 자랑하였던 첨탑, 그리고 첨탑에서 바라다보는 경치로 유명세를 얻은 교회이다. 첨탑의 높이는 123.7m이지만, 실제로 걸어 올라가서 주변을 볼 수 있는 곳은 60m 부분인데, 첨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하여야 한다.  

탈린의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258 계단을 올라야 한다. 물론 계단의 개수가 258개라고 하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계단수는 많지 않지만 아주 좁은 통로를 올라야 하고, 그에 더하여 오르고 내리는 사람의 동선이 중복되어 오르다 서다를 반복하여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만큼 힘들다. 그렇지만 올라가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일단 전망대에 서면 아무 데나 사진기를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대도 그냥 엽서가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구시가지를 바라보아도, 

또 바다를 바라보아도 한없이 멋있다.  

심지어 신시가지 쪽을 바라보아도 그리 나쁘지 않은 풍경이다. 

아, 아쉽게도 올리베스테 교회의 모습은 보여 주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올리베스테 교회가 좁은 골목길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를 멀리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사진은 이 정도가 최선의 것인데, 이들 사진은 교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막상 올레비스테 교회의 모습, 특히 주변의 건물과 어우러진 첨탑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탈린의 고지대에 있는 돔 성당옆에 탈린을 조망할 수 있는 또 한 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면 올레비스데 교회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느 것이 올레비스데 교회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2. 니굴리스테 교회(Niguliste Kirik)


뒤에서 이야기하는 시청사광장에서 남쪽으로 곧게 뻗어 있는 거리가 아래 사진에서 보는 Harju거리인데, 이 거리를 따라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거리 오른편에서 니굴리스테교회를 만날 수 있다.  

니굴리스테교회는 상인들과 항해자의 수호신인 성 니콜라우스(니굴리스테)에게 바쳐진 교회인데, 독일 상인들의 헌금으로 13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지금의 교회건물은 예전 그대로의 것은 아니고, 1944년 러시아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니굴리스테 교회가 있는 곳의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니굴리스테 교회 역시 교회의 모습 전체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여 교회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교회의 모습을 잡아보려고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이 아래의 사진들인데, 아쉽게도 니굴리스테 교회의 모습을 전해주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니굴리스테 교회 전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는 니굴리스테 교회 안내서에 있는 사진만 한 것이 없다. 하여 그 사진을 가져왔는데, 사진의 색조가 위에서 보여 준 다른 사진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굴리스테 교회는 현재는 교회로서의 의미보다는 박물관으로서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는 듯한데, 교회의 출입구에도 박물관이란 표지만 선명하다. 니굴리스테 교회가 이처럼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된 이유는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 안에 있던 역사적 유물과 예술작품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서 그들이 온전히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니굴리스테 교회의 입구.

주된 기능이야 여하하든 간에 일단 교회이니 제단으로 이어지는 중앙통로를 먼저 보아야 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샹들리에는 바로크/르네상스식인데, 이들 샹들리에 역시 미리 다른 곳으로 옮기어 놓았던 관계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제단화인데, 전형적인 제단화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교회 뒷면의 모습인데, 이렇게 바라보니 파이프오르간과 샹들리에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니굴리스테 교회는 박물관적 성향이 강하여 교회 곳곳에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역시 노트케(Bernt Notke)의 "죽음의 춤(Dance Macabre)"이다. "죽음의 춤"은 16세기 후반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화면 구성이 무언가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이 도저히 실제 작품의 감동을 전혀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까운데, 정말 한동안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독특했다. 아, 죽음의 춤은 교회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곳에 있어 무심코 교회를 둘러보다가는 놓치기 쉬우니, 주의 깊게 챙겨보아야 한다. 

죽음의 춤에 대하여는 이렇게 별도로 자세한 설명이 있다. 당시에는 주의 깊게 읽어 보았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회 중앙제단의 오른쪽에 스웨덴 성 미셀 교회의 세례반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커만(Christian Ackermann)의 1680년대 작품이다. Ackermann은 나무를 이용한 조각가로서 당시에도 이미 조각가로서의 위명을 떨쳤던 사람이라고 하는데, (뒤에서 이야기하는) 고지대에 있는 돔 성당의 제단도 그의 작품이다.

교회 뒤편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바로 밑에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 사진에 담아 보았는데, 막상 그림은 잘 안 보인다. 

제단화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인데, 제단이 아닌 교회의 복도 한 복판에 이렇게 놓여 있다.  

기둥과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장식들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내가 조금 오래 바라보았던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교회 뒤편에 있던 대형 촛대인데, 유대교의 성전인 시나고게에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돌아 나오는 길. 폭격으로 교회가 붕괴되었을 때의 모습과 그 후의 복구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니굴리스테 교회는 오늘날 거의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교회의 이곳저곳에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하려면 도록이 필요한데, 도록은 기념품샵에서 판매한다. 다만 미술에 큰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록 없이 그냥 둘러보는 것이 마음 편한 면이 있다. 


3. 돔 성당


 '성모 마리아성당'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돔 성당(Toomkirik)은 탈린의 고지대인 톰페아(Toompea) 언덕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돔(Dom/Toom) 성당이란 이름 때문에 나는 이 성당이 탈린의 교구성당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돔 성당의 팜플렛을 자세히 읽어보니 돔 성당이 에스토니아의 루터파 교회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돔 성당은 가톨릭성당이 아니라 개신교 교회라는 이야기인데.... 돔 성당의 성격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도 풀지 못하고 있다. 

탈린의 다른 교회나 성당과 달리 돔 성당은 그 앞에 광장이 있어서 성당 전체의 모습을 어느 정도 잡아 있었는데, 먼저 성당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하겠다.   

촬영이 용이하다 보니 돔 성당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잡아 보았는데, (중복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내 카메라에 담겨 있는 돔 성당의 외관 사진을 방출하기로 한다. 

성당과 주변 건물을 하나의 시각으로 담아내면 이렇게 된다는데, 이런 사진을 나 같은 개인 관광객이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아래 사진은 성당의 팸플릿에 있는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돔 성당의 입구인데, 무언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중앙제단으로 나아가는 통로인데, 성당의 경우에는 이를 보통 - 성당의 몸체가 되는 복도란 의미에서 - 신랑(身廊)이라고 부른다.

중앙제단인데, 이 제단(1694년 -1696년)과 설교단(1686년)은 모두 앞서 이야기했던 Ackermann의 작품이다. 

제단 옆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신은 서지 않는다. 

교회 후면의 모습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오르간은 1914년에 완공된 것이라고.

성모 마리아 성당이란 이름을 가진 성당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인데... 작품성이야 내 모르겠고, 그림 속의 성모자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탈린의 돔 성당이라고 하면 이 성모자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내 머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작품인데, 아쉽게도 작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랑과 직각으로 만나는 교차랑(交叉廊) 주변의 모습. 

내부의 모든 조명을 모두 밝히고 플래시를 빵빵 터뜨려가며 찍으면 이런 사진을 얻을 수 있나 본데(성당 팜플렛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금은 어두운 듯한 사진을 플래시 없이 찍은 것을 좋아한다. 성당이나 교회 사진이라면 더욱 그러하고. 

성당 측면에 있는 작은 예배당을 둘러보고, 돔 성당을 나왔다. 

돔 성당을 나와 코흐투(Kohtu) 거리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전망대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탈린 구시가지 풍경은 정말 압권이다.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올레비스테 교회이다.

물새가 벽 위에 앉아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셔터를 눌러대도 전혀 움직일 줄을 모른다. 아니 미동도 없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저 물새의 관람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4. 성령교회


위에서 보여준 3개의 교회는 탈린을 소개하는 각종 안내 책자에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성령교회(Holy Spirit Church)"에 대한 설명은 그들 안내 책자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탈린의 모든 교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교회인데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평가라는 것은 주관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된다.  


성령교회는 베네(Vene) 거리를 따라 시청사 광장으로 가다가 보면 시청사 광장 못 미쳐 에스토니아 역사박물관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높은 첨탑을 가진 교회를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데, 그 교회가 바로 성령교회이다. 일단 교회의 외관인데, 오른쪽 벽에 핑크빛이 감도는 것은 그 앞의 건물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건물의 외벽은 순백색이다. 

출입문 오른쪽 위의 벽에 시계가 매립되어 있다. 아침 일찍부터 관광에 나서서 구시가지의 절반도 못 보았는데, 벌써 시간이 꽤 흘러서 시간은 12시를 막 넘기고 있다.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교회인데, 다른 교회들과 달리 교회 안을 보려면 입장권(1유로)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이곳을 찾았던 것이 벌써 6년 전이니, 지금은 적어도 1.50유로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앙제단으로 이어지는 통로인데, 무언가 장중함이 느껴진다.

성서 속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이 복도 왼편에서부터 제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많은 교회들에서도 이런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림의 수준과 그림을 감싸고 있는 틀이 다른 교회의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는...  

중앙제단의 모습인데, 재단화(?)가 입체적이다

교회 뒤편의 모습인데, 전체적으로 우드톤이 두드러진다. 

중앙제단으로 이어지는 통로 옆으로 또 하나의 복도가 있는데,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위 사진 속의 복도 뒤쪽에서 바라본 교회 안의 풍경인데, 기둥마다 많은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월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림들이 있고,  

나무에 직접 그린 듯한 그림도 있다.

크지는 않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둥에 걸린 그림 중 내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림인데, 그림 속의 왼쪽 인물은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겼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생각나게 만든다. 하여 교회의 안내인에게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림 오른쪽의 인물은 루터의 종교적 동반자였던 멜란히톤(Melanchton)인가?라는 생각에 다시 물었더니, 역시 맞다고 한다. 독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 시청 앞 광장에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동상의 주인공들이 탈린의 성령교회에서는 하나의 화폭 안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루터파 교회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역시 그렇다고 한다(안내자에게 확인).  


5.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 등


탈린 구시가지에는 앞에서 열기한 것들 이외에도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있는데, 지금부터는 그 가운데에서 내가 나름 시간을 할애하며 둘러본 것들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1) 성 베드로와 바울(SS Petri et. Pauli) 교회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는 (다음글에서 이야기하는) 카타리나 골목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베네거리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교회인데,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탈린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에는 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고, 단지 안내지도에 그림으로만 표시되어 있는 교회인데, 이런 팻말이 붙어 있어 교회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교회 양옆으로 똑같은 형상의 이런 부조가 있었다. 하나는 베드로, 다른 하나는 바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사진기에는 이것 한 장만 남아 있다. 어쩔 수 없이 두 분 성자 중 어느 한 분께 꾸지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보다시피 교회로 들어가는 문은 활짝 열려있는데, 내부는 비공개(시간이나 요일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여 교회 내부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


(2) 니콜라이교회

"니콜라이 교회(NIKOLAI KIRIK)" 역시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처럼 안내책자에는 설명이 없고, 지도에만 나와 있는 교회이다. 외관만 보아도 정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성 베드로와 바울교회에서 베네거리를 따라 올레비스테 교회 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이 교회를 만나게 된다.

교회의 이름은 교회 앞에 붙어 있는 이것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1822년 - 1827년 언간에 지어졌다.

교회의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지만, 잘 아는 것처럼 정교회는 교회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해서 내부는 보여주지 못한다.


(3) 알렉산더 네프스키 교회

"알렉산더 네프스키(Alexander Nevski) 교회"는 고지대인 톰페아 언덕의 성광장(城廣場)에 있는 교회인데, 이름이나 모습에서 러시아정교회 건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던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축조연대는 1900년으로 이제 100년을 조금 넘어선 건물이다.   

광장에서 주변 건물과 함께 바라본 교회의 모습.

알렉산더 네프스키 교회 또한 교회 안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멀리서 찍어 봤는데, 무언가 핀트가 안 맞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양파 모양의 돔(탑)만 사진에 담으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십자가의 모양이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다만, 사진을 보면 무엇이 다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설명은 생략한다. 


* 탈린 이야기는 그 내용이 많아 두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교회와 성당 이외의 볼거리들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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