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박찬호 기념관"에서 박찬호를 만나 봅시다.
잘 나가고 있는 줄만 알았던 대한민국 경제가 송두리째 침몰했던 일을 잘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외화수지를 간신히 유지했던 그 끔찍한 일 말이다. 우리는 그 시절을 속칭 IMF사태라고 불렀는데, 그 암울했던 시기에 공주 출신의 두 명의 운동선수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그 하나는 LPGA를 호령했던 '박세리'프로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하는 '박찬호'선수이다.
박찬호...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야구선수이다. 만년에 저니맨에 가까운 행보가 조금 안쓰럽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Mlb에서 124승으로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것만으로 대단한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억하건대 단일시즌에 18 승을 올리기도 했었지, 아마. 내 야구전문가가 아니니 선수로서의 박찬호에 대해서는 이 정도 이야기 해두는 것으로 그치기로 하겠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야구선수 박찬호가 아니라, 박찬호의 고향인 공주에 들어선 "박찬호 기념관"이니까 말이다.
박찬호 기념관은 충남 공주시 산성찬호길 19에 있다. 길 이름 자체에 '찬호'가 들어가 있는 것이 이색적인데, 공주의 관광명소인 공산성이나 산성시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언덕배기에 이렇게 들어서 있다.
박찬호 기념관을 찾아가는 도중에, 어느 건물 담벼락에서 역동적인 박찬호의 투구폼과 산성찬호길이 적힌 글씨를 발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건물이 박찬호 기념관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박찬호 기념관이라고 쓴 글씨와 포스터까지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아래사진 오른쪽 밑에 박찬호 기념관은 여기서 130m를 더가야 한다는 것이 분명히 적혀 있다. 결론적으로 이 건물은 박찬호 기념관이 아니었다.
그렇게 130m를 더간 곳, 그곳에 이렇게 널찍한 주차장까지 갖춘 박찬호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앞. 바로 지축을 박차고 튀어나갈 것 같은 역동적인 모습의 황소상이 보인다.
무심히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이 황소는 폐타이어로 만든 작품이다. 지용호란 분의 2018년 작품으로, 그 크기는 610×200×230cm에 이른다. 작품의 제목은 볼 것도 없이 'Bull(황소)'.
박찬호 기념관(Chanho Park Museum) 입구. 안내판이 서있다.
아래와 같은 가이드가 없어도 박찬호 기념관의 전시물을 관람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두 개의 벽면에 다저스시절의 박찬호의 모습과, 그의 핵심적 기록이 적혀있다. 맞아. 박찬호를 코리안 특급(Korean Express)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지.
공주 중동중학교 시절의 박찬호의 방을 재현해 놓았고,
노모 히데오와 같은 밥을 먹던 다저스 시절의 락커룸도 재현해 놓았다.
박찬호가 입었던 유니폼들. 피츠버그, 뉴욕 양키스, 필라델피아, 샌디애고, 텍사스... 음, 많이 거쳐가기는 했다.
그리고 다저스, 한화 이글스, WBC때의 국가대표 유니폼도.
박찬호가 등판했던 경기의 티켓들로 추정되는 전시물.
박찬호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메이저리거들의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런 인형을 부르는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야구 매니아들이라면 주의 깊게 보게 되는 전시물인데, 실밥(Seam)을 어떻게 잡고 던져야 원하는 구종을 뿌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본구종이라 할 수 있는 체인지업, 커브, 패스트볼(투심인가?)은 물론이고,
너클볼과
팜볼,
그리고 포크볼까지.
야구체험관은 전시관과는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데,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건물의 옥상이자 전망대인데,
박찬호 특유의 투구폼을 형상화한 작품이 그가 자란 공주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다시 보아도 그의 하이킥은 참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