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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Oct 13. 2023

바덴바덴에 브람스(Brahms)의 여름별장이 있다고?

막시밀리안거리 85번지 "브람스하우스(Bramshaus)"가 그곳입니다.

헝가리무곡이나 자장가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작곡가 브람스(J. Brahms, 1833~1897)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태어났지만,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의 소개를 얻어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 진출한 이후에는 독일 쪽으로 발걸음을 거의 하지 않았다.

브람스는 죽음 또한 빈에서 맞이했는데, 현재 빈 외곽에 있는 빈 중앙묘지(Wiener  Zentralfriedhof)에 잠들어 있다. 아, 빈 중앙묘지는 187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약 33만 개의 묘와 300만 구에 이르는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아주 커다란 묘지인데, 이곳의 "음악가 묘지구역"에는 브람스 이외에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도 함께 잠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 함부르크에 있는 그의 기념관을 제외하면 - 독일 내에서 브람스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니더발트기념비(Niederwalddenkmal)가 있는 니더발트 정상에서 포도밭쪽으로 내려가는 산책로를 브람스가 즐겨 걸었다고 하여 그 길을 브람스의 길(Brahnsweg)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브람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와 달리 브람스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브람스가 1865년부터 1874년까지 매년 여름이면 찾곤 했다는 바덴 바덴(Baden-Baden)이 바로 그곳이다. 한편 바덴바덴에는 브람스가 머물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브람스하우스(Brahmshaus)가 그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사람들조차 바덴바덴에 있는 브람스하우스의 존재를 잘 모른다는 것이고, 나 또한 이미 2번씩이나 바덴바덴을 찾았었지만 이곳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그러다 브람스에 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는 도중에 우연히 브람스하우스의 존재를 알게 되어 또다시 바덴바덴을 찾게 된 것이다. 브람스하우스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면, 브람스하우스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브람스하우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길을 하나 건너면 이런 안내판을 만날 수 있는데, 안내판 속의 모습이 브람스하우스 주변의 옛 모습인 듯싶다.

안내판 옆으로 계단이 나 있는데, 그 계단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하얀 집이 바로 브람스하우스이다. 

그리고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브람스하우스를 소개하는 글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번 보아서 내 머릿속에 또렷한 그 모습과 정말 똑같은데, 몇 발자국을 더 뗀 후에 다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벽면에 브람스하우스(박물관)의 개관시간, 출입구등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는데, 특이하게 목요일이 휴관이다. 다만 개관시간이 아니어도 71172로 전화를 해서 말만 잘하면 볼 수도 있는 듯하다. 

아, 브람스가 1865년부터 1874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브람스는 이 건물을 여름별장 개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래 사진 속의 표지만 중간 부분에 "Sommerwohnung"이라는 단어 때문인데, Sommerwohnung이란 단어는 Sommer(여름) + wohnung(주거)의 합성어이다.     

마냥 이뻐 보이던 하얀색 건물을 돌아서면 조금은 초라한 벽면이 나타나는데, 끄트머리에 보이는 불빛이 비쳐 나오는 곳이 브람스하우스의 입구이다.

입구 오른쪽 위에 1864년부터 1875년까지 브람스가 이곳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브람스하우스 내부는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다. 아주 좁은 공간에 그냥 사진 몇 점과, 브람스의 흉상, 그리고 브람스가 실제로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는 가구가 몇 점 있을 뿐이다. 일단, 침실과 거실로 나누어진 공간을 3장의 사진에 담아 둔다. 워낙 좁은 공간이어서, 이곳을 찾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구도의 사진 3장을 남기게 될 것이란 느낌이 든다. 침실이고,

거실이다. 

이 정도면 내가 브람스하우스를 찾았다는 증명은 충분히 된 것 같으니,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갖고 찬찬히 브람스하우스를 둘러보아야겠다. 우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흉상에는 눈길을 한번 준다.   

브람스는 - 우리가 지금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평판과는 조금 달리 - 당대에는, 심지어 그가 죽은 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은 내가 브람스와 관련된 곳을 몇 군데 돌아다녀 본 결과 받은 느낌에 기초한 것이다. 우선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2층짜리의 작은 집에 마련되어 있는 함부르크의 브람스기념관은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힘들 정도이며, 또한 그가 말년을 보낸 빈에는 그의 독자적 기념관이 아예 없이 하이든 박물관의 한 구석에 방 한 칸을 간신히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 브람스하우스에도 그의 삶의 족적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그 무엇은 없다. 좋게 말하면 그의 소박한 풍모를 반영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초라하다는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공간에는 브람스의 깜찍한(?) 모습의 자그마한 조각상이 왼편에 두 개 보이고, 이런저런 소품이 있다. 맨 오른쪽의 사진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인데, 음악가로서의 두 사람의 삶이 공존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라이프치히(Leipzig)의 멘델스존 하우스에서 브람스가 "내가 헤브리덴 서곡과 같은 작품 하나만 쓸 수 있다면, 내 모든 작품을 기꺼이 내놓겠다"라고 멘델스존을 극찬했던 말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유럽 사람들이 즐겨 만드는 데스마스크인데, 이례적으로 손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가, 무언가 섬찟하다.

특별한 설명이 없는 전시물인데, 느낌상 브람스의 자필 악보인 듯하다. 

브람스하우스의 각종 전시물 중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본 것인데, 브람스가 지휘자로 활동했던 시절(1893/1894년)의 브람스 모습을 Willy vom Beckerrath란 사람이 간략히 스케치를 한 작품이다. 아, 이 그림은 액자 없이 15유로에 판매하고 있었는데(2018년 8월), 괜스레 번거로울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눈에 밟힌다.    

이것도 나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독일 전역에 있는 음악가들의 기념관(박물관) 안내도이다. 북쪽의 함부르크에 브람스기념관이란 글씨가 보인다.

브람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슈만(R. Schumann, 1810~1856)과 그의 부인인 클라라(Clara, 1819~1896)이다. 그래서인지 브람스하우스에도 두 사람의 사진이 보인다. 슈만은 브람스를 빈의 음악계에 소개해 준 사람으로 어찌 보면 브람스의 스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인데, 브람스는 슈만뿐만 아니라 유럽 사교계를 주름잡던 그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도 각별한 관계를 평생토록 유지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브람스와 이들 부부의 관계를 삼각관계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글쎄... 일세를 풍미했던 위대한 음악가들이 관계를 이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브람스하우스인데, 막상 브람스의 사진보다 슈만과 클라라 사진이 더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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