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2등의 특목고 도전기
중학교 졸업도 결국 전교 2등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수원시장상도 받았다. 자부심도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특목고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는 동탄국제고등학교에 지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명 깊게 읽었던 책,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의 영향으로 해외 유학의 꿈이 남아있었다. 내 내신은 200점 만점에 198.4점. 전국 단위 자사고인 공주 한일고등학교나 전주 상산고등학교에도 지원해도 될 성적이었다. 하지만 왠지 국제고가 더 끌렸다. ‘국제’라는 단어가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국제고나 외고는 전과목 내신이 아니라 영어 성적만 반영했다. 모든 과목 성적이 고르게 우수했던 나에겐 상대적으로 불리한 전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감히 지원했다.
1차는 무난히 통과했다. 아마 정원의 2배수 정도를 뽑았을 것이다. 문제는 2차 면접고사였다. 독서감상문도 제출했는데, 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다고 썼다. 분명히 읽긴 읽었지만, 그 속에 담긴 비유적 의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걸 면접에서 그렇게 깐깐하게 물어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긴 책상에 면접관 세 명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나는 맞은편 조그만 책상에 앉아 긴장한 채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맨 왼쪽 면접관은 나의 학업 목표에 대해 물었다. 괜찮았다. 그런데 가운데 앉은 여자 면접관이 문제였다. 『동물농장』 감상문을 쓴 이유, 내용의 상징적 해석 등을 물어보는데, 나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당황한 나는 되레 면접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면접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고, 그 순간부터 면접은 완전히 무너졌다. 맨 오른쪽 면접관에게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야말로 폭망한 면접이었다.
불합격을 예상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는 있었는지 불합격창을 보자 낙담했다. 원천중 차석 졸업이었지만 나의 특목고 입시는 그렇게 끝났다. 정보력 부족, 그리고 나의 준비 부족 탓이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뿐이었다. 원천중에서 멀지 않은 유신고등학교나 창현고등학교 중 하나로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세마고등학교라는 곳을 추천해줬다.
세마고는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특목고에 떨어진 학생도 지원 가능한 후기 학교였다. 당시 막 4기 신입생을 받는 신생 학교였고, 전년도 3기 커트라인이 내신 200점 만점에 195점이었다. 내신 195점? 이건 전교 10등 안에 들어야 가능한 성적이다. 자사고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높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일반전형으로 지원하면 면접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은 급격히 세마고 쪽으로 쏠렸다.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머니는 세마고에 가면 내신을 따기 힘들다며 가까운 유신고로 진학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세마고로 떠나 있었다.
결국 세마고에 지원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입학한 4기의 커트라인은 194점으로, 전년도보다 소폭 낮아졌다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학년당 300명이 조금 넘는 학생수. 즉, 그 모든 아이들이 중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었던 모범생이었다는 뜻이다. 내 성적도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였다. 내신 198.4점은 9번째로 높은 입학 내신이었다. 물론 공부가 그닥이었던 원천중학교를 다녔던 덕에 내신을 잘 챙길 수 있었던 것이고, 직접 비교는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입학식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니 괜히 우쭐했다. ‘여기서도 잘하겠지’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입학 전 반편성 배치고사가 두 번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으로 순위를 매겼다. 첫 번째 시험에서 전교 46등, 두 번째 시험에서는 전교 100등대까지 추락했다.
국어가 특히 문제였다.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국영수 방과후 심화반을 나눴다.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1반부터 4반까지 학생들이 배치되었다. 나의 경우, 수학과 영어는 1반이었지만 국어는 3반이었다. 중학교 내신형 시험에 익숙했던 나에게 국어 시험이 낯설고 어려웠다. 생전 처음보는 글로 날 평가하다니!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좁은 세계의 ‘전교 2등’은 넓은 세상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고등학교 입학을 무를 순 없었다.
3월이 되고, 고1 첫 모의고사를 치렀다. 시험 범위는 중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내신형 공부에만 익숙해져 있어 수능형 문제의 지문과 형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기출을 열심히 풀어보고 시험에 임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국영수에서 모두 1등급. 하지만 국어 93점, 수학 84점, 영어 97점으로 모두 1등급 커트라인 점수라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국영수 올 1등급이라 나름 만족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그 성적조차 전교 100등 언저리였다.
‘나보다 잘 본 애들이 100명 넘게 있다고?’
이어지는 학교 수업 속에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암기에 강했다. 내신만큼은 자신 있었다.
‘배치고사와 3월 모의고사의 굴욕을 반드시 갚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