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싸움에 교사 등만 터진다
1학기는 무난히 흘러갔다. 4학년 5반 아이들은 특별히 말썽을 부리는 학생도 없었고, 내가 맡은 학교폭력 업무 역시 조용했다.
하지만 2학기, 추석 연휴를 전후로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학교폭력 신고가 연달아 두 건이나 접수된 것이다. 그중 한 건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다. 피해 학생은 3학년 남학생이었다. 점심시간에 놀이터에서 5학년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보호자께서 단호하게 학교폭력 접수를 요구하셨다. 나는 업무 담당자로서 접수를 진행하고, 곧바로 사안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분리해 면담하고, 양측 보호자에게도 접수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다음 날, 피해 학생의 가족과 가해 학생의 부모가 모두 학교를 찾아왔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차분하게 상황을 조율하며 조사를 이어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실이 하나 더 밝혀졌다. 사건 당일, 피해 학생이 놀이터에서 울고 있자, 피해 학생의 조부가 격분하여 5학년 학생을 직접 폭행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5학년 학생의 보호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할아버지는 아동학대 혐의로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분을 삭이지 못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가 가해 학생의 집을 찾아가 격한 언행을 하며 협박성 발언을 했고, 이 일 역시 경찰에 접수되었다. 학교 안에서는 조사를 진행하며 양측을 중재하고 있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사태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학교폭력은 단지 두 학생 사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파장은 가족과 이웃, 나아가 지역사회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아이 하나가 다치면, 그 주변 어른들의 감정도 함께 요동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결국 5학년 가해 학생은 사건 이후 개명을 하게 되었다. 학교폭력이라는 일이 한 아이의 이름까지 지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그날의 기록을 내 USB 안의 ‘학폭사안일지.hwp’에 담아 저장했고, 그 파일을 저장할 때 손끝이 떨렸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요즘은 학교마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라는 직책이 생겨, 교사들의 행정 부담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고, 모든 것을 교사가 감당해야 했다. 처음엔 ‘학폭?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사건이 터지고 나면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가해 학생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절차상의 하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작 피해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은 없다. 피해 학생이 가해학생에서 빼주겠다고 하면 그제서야 서둘러 사과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미 화해를 했어도 부모의 감정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학교폭력 사안의 처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학교장 자체 해결’, 다른 하나는 ‘교육지원청 이관’이다. 학교장 자체 해결은 말 그대로 학교 안에서 자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교장 선에서 처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해 학생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사안의 경중과 무관하게 학교장 자체 해결은 불가능하다. 이 제도의 취지는 피해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교무실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는다. “선생님,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보호자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들어보면, 사안은 의외로 사소한 경우가 많다. 지우개를 던졌다는 이야기 혹은 다리를 살짝 걸었다는 식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순간적인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 행동이 ‘학교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공식 절차로 올라가는 순간, 단순한 장난은 명백한 폭력이 된다. 누군가의 기분이 상하면, 그건 사안이 되고, 누군가의 입장이 불쾌해지면, 그건 곧 규정 위반이 된다.
가해 학생 보호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 아이도 예전에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상대 아이도 우리 애한테 욕했대요.” 결국 쌍방 학교폭력으로 접수되고, 양측이 서로를 향해 학폭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 결국 교사는 양쪽 학부모의 전화를 하루에도 수차례 받아야 하고, 조사보고서를 써가며 한 줄 한 줄 신중하게 워딩을 다듬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 모든 일이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로 묶여야만 하는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아이들끼리 사소하게 싸우고, 풀고, 다시 노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다. 심지어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져도, 대체로 담임 선생님이 중재하고 넘어갔다. 누군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지속적인 괴롭힘이 아니라면, 그런 갈등은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곤 했다. 물론, 상처받은 아이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모든 갈등을 ‘학교폭력’으로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요즘은 아이보다 보호자가 더 예민하고, 어른이 더 감정적으로 흔들린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학폭이 성립된다. 그럴 땐 가끔, 이 시대가 너무 날이 서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씩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양보하기보다는, 내가 입은 손해를 곱씹으며 상대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이건 정말 아이들의 문제일까?’ 어쩌면 지금의 학폭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인 산물인지도 모른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어른들,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목소리들, 이기심으로 무장한 단호함. 정작 그 사이에서 상처받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폭력 업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행정적인 절차를 밟는 일보다도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는 것이라고. 때로는 조용한 중재자가 되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자의 역할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학교폭력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고가 들어오고 나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집안 싸움이 된다. 이미 엇갈린 감정이 서로 깊어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완전히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더더욱, 처음부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학교폭력예방 연수 자리에서 방금 사례를 종종 소개하곤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몇몇 아이들의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문득, 어린 시절 놀림받던 나 자신을 떠올렸다. 손가락이 셋이라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유 없이 모욕을 들었던 그날의 공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