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에서 화해까지, 내 몸이 알려준 느린 리듬
유방암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낯선 불편함을 마주했다.
어느 날 오른팔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펜을 쥐어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수저를 들 때도 어색했다.
병원에서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수술하면서 림프절을 스물두개 절제했기 때문에 림프부종이 올 수 있습니다.”
그 말 중에서도 ‘스물두 개’라는 숫자만 크게 들렸다.
몸속 흐름의 작은 이정표들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의사는 조심해야 할 것들을 길게 나열했다. 무거운 것 들지 말기, 뜨거운 물 피하기, 주사·채혈 금지, 벌레 물리지 않기… 말 그대로 ‘귀족처럼 살라’는 지침들이었지만, 평생 머슴처럼 살아온 나에게는 하나하나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했다. 낮에는 압박장갑을 끼고, 밤에는 여섯 겹의 붕대를 팔에 감았다.
밤 10시가 되면 남편은 어김없이 말했다.
“붕대감자~!”
겹겹이 감길 때마다 내 팔은 마징가 Z의 무쇠팔처럼 단단해졌다.
‘이 팔로 남편 톡 치면 날아가는 거 아니야?’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웃어 넘긴 밤들도 있었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날도 있었다.
림프 흐름 검사를 받던 날, 의사는 화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른팔 림프가… 98% 정도 막혀 있네요.”
그 숫자는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내 마음에 떨어졌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절망이 목 끝까지 차오르려던 순간 의사가 말을 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림프정맥문합술이라고, 막힌 림프관을 정맥과 연결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수술이에요.”
칼을 다시 댄다는 사실이 무서웠지만 ‘때가 있다’는 말에 결국 수술을 선택했다.
수술 직후 내 손은 고무풍선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3년쯤 되었을까. 어느날, 문득 아주 작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손가락 마디에 자리 잡은 작고 얇은 주름 한 줄. 수술 이후 사라졌던 그 주름이 조용히 돌아와 있었다.
“주름아,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는 모르겠다.
늘 퉁퉁 부어 있던 녀석이 어느 날 화를 풀고 나에게 조심스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이제 림프부종은 더 이상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매일 데리고 걸어가는, 아주 천천한 리듬 같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그 리듬과 함께 조용히,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림프부종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자 내 몸을 오래 괴롭혀왔던 또 다른 시간도 조용히 떠올랐다.
몸이 회복을 배우면 마음은 언젠가 그동안 밀어두었던 기억을 꺼내오곤 한다.
다음 이야기는 가장 고단했던 3년, ‘시험관 치료 속에서 나를 잃어가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