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위로도 닿지 않던 날
“엄마, 나 검사했는데 유방암 2기래. 다음 달에 수술하기로 했어.”
전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통화가 끊긴 줄 알고 화면을 다시 확인할 만큼 적막했다. 잠시 뒤, 잘게 부서진 숨소리가 들렸다.
“네가 왜… 왜 그런 병에 걸려. 아니다. 이게 다 내 죄다. 내 전생의 업보가 다 너한테 간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안쓰러움과 자책이 뒤엉켜 수화기 밖으로 흘러나왔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복잡했다. 괜히 말했나. 얼마나 놀랐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숨이 막혔다. 아픈 건 나인데, 또다시 엄마가 죄인이 된다. 위로를 받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어느새 내가 엄마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 들었어. 유방암이라며. 너 괜찮아?”
“어… 너무 걱정하지 마. 수술하고 항암 하면 괜찮겠지.”
“응, 그래. 근데 목소리는 왜 이렇게 멀쩡해?”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암 환자한테 맞는 목소리란 게 따로 있는 걸까. 심장 한가운데가 서늘해졌다. 또 다른 친구는 유방암 정보를 쏟아냈다. 재건 수술의 위험성, 부작용, 재수술 확률. 들을수록 숨이 가빠졌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정보가 아니라 “잘 될 거야” 한 마디였는데.
서늘한 마음을 달래려 집을 나섰다.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봤다. 4월의 하늘은 이상할 만큼 맑았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다. 문득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내 친구가 암에 걸렸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줬을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선뜻 떠오르는 말은 없었다. 아마 나 역시 상대의 마음보다 내 불안을 먼저 꺼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 앞에서는 누구나 서툴다.
엄마도, 친구도, 나도, 우리 모두 처음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들의 서툶을 고쳐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떨어져 서 있어도 괜찮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나를 조금 더 안아주자.”
그날 내가 나에게 건넨 첫 번째 위로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