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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03.서툰 위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던 날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던 순간, 내가 나를 안아준 이야기

by 봉순이


“엄마… 나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가서 검사해보니 유방암 2기라고 하네. 다음 달에 수술하기로 했어.”


전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아무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곧 작은 흐느낌이 이어졌다. 그리고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네가 왜… 이런 병에 걸려… 아니다. 이건 다 내 죄다. 내 전생의 업보가 너한테 간 거야…”


수화기에서는 안쓰러움 반, 스스로를 탓하는 말이 반 섞여 길게 흘러나왔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그냥 전화하지 말걸 그랬나.’


후회가 올라오다가도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이해가 되다가, 그러면서도 또 답답함이 밀려왔다. 왜 엄마는 전생의 죄까지 끌어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엄마의 걱정은 때때로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식 들었어. 유방암이라며… 너 괜찮아? 근데… 목소리는 왜 이렇게 멀쩡해?”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
‘암환자는… 멀쩡하면 안 되는 건가?’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마음 한가운데에 바람구멍이 뚫린 듯했다.


또 다른 친구는 유튜브에서 본 유방암 수술 정보를 의학 다큐처럼 줄줄 설명해줬다. 가슴복원 수술의 위험성, 부작용, 회복 과정... 의사보다 더 친절했지만, 이상하게 귀찮았다. 굳이 지금 이 모든 걸 알아야 하나 싶은데 그녀의 말 절반은 부작용이었다. 점점 피곤함이 몰려왔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알리면서 그들이 “위로”라고 건넨 말들이 오히려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사실이 날 더 지치게 했다. 열도 식힐 겸 병원 벤치에 혼자 앉아 천천히 숨을 고르다 문득 생각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암에 걸렸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단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조금 전까지 나를 찌르던 말들이 조금은 이해됐다.


그건 ‘상처를 주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서툼’에서 나온 것뿐이었다.

그들도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테고, 내 입장에서 무엇이 위로가 될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착한 서투름이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땐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마음속 서운함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그날, 나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오늘은… 나를 조금 더 안아주자.

그래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고맙잖아.”





마음이 조금 제자리를 찾자 비로소 ‘몸’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

수술, 림프부종, 회복의 시간들, 내 몸이 겪어야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부는 마음이 먼저 흔들렸던 내가 이제는 몸과 마주 서며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2부 첫번째 이야기 '가슴 복원 수술 앞에서' 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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