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아니라 공포를 더 많이 만났던 시간
수술 날짜는 3개월 뒤였다. 의사는 그것이 가능한 가장 빠른 일정이라고 말했다.
“3개월 금방 가지 않아?”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내 마음속 시간은 피가 마르는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조직검사 부위가 욱신거릴 때면, 검사 도중 떨어져 나온 암덩이가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그 무렵부터 내가 매일 하던 일은 단 하나였다.
마치 출근하듯 컴퓨터를 켜고 ‘암’이라는 키워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카페, 블로그, 유튜브, 댓글… 나는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던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병원 후기 → 재발 후기 → 수술 실패 후기
점점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골라 읽고 있었다.
“어머어머, 유방암은 ○○대학병원이 최고래.”
“내가 다니는 교수님은 평판이 별로라던데… 옮겨야 하나?”
“2기라더니 수술해보니 4기였다더라…”
내 눈은 끔찍한 사례와 뉴스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비극을 무의식적으로 쫓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매일 말했다.
“인터넷 카페로 출근하지 마. 머리만 복잡해져.”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두려움을 잠재울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구해줄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암환자용 보습크림, 혈액순환 양말과 장갑, 면역에 좋다는 찜질팩, 듣도 보도 못한 건강보조제들…
그 물건들만 손에 넣으면 마치 새로운 장비를 장착한 히어로가 된 것처럼 암세포를 거침없이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벼락 맞은 나무에서 음이온이 나온다”는, 가격도 벼락 같은 180만 원짜리 사탕.
“남편, 이거 사야 할 것 같아.”
“얼마인데?”
“…180만 원.”
“사탕 하나가 180?!”
남편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괜히 드라마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돈이야, 나야?”
그렇게 나는 결국 결제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도착한 대형 박스를 열자 면역용, 수면용, 스트레스용, 운동용...
십여 가지의 사탕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신중하게 하나를 까먹으며 상상했다.
‘벼락 맞은 나무니까… 내 몸 안에서도 벼락이 쳐서 암세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려나?’
하지만 기적도, 벼락도, 심지어는 마음의 평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건 사탕 포장지 더미와 쓴웃음을 짓는 나뿐이었다.
그제야 또렷하게 알았다. 공허한 마음은, 아무리 비싼 물건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암은 몸과만 싸우는 병이 아니라 나를 덮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도 싸우는 병이라는 것을.
나는 조용히 사탕통을 닫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래. 이제는 수술하러 가자. 마음을 단단히 하고, 나를 믿자.”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한 발걸음으로 병원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