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나는 오랫동안 내 편이 아니었다

암 이후,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하여

by 봉순이

마흔이 되면 인생의 파도가 잔잔해질 줄 알았다. 적당히 타협하고 유연해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마흔의 문턱에서 인생은 선전포고도 없이 포격을 시작했다. 유방암이라는 불청객, 3년의 시험관 실패, 그리고 무너진 엄마의 시간들. 탄환 하나를 겨우 피하면 다음 포탄이 떨어졌다.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지던 날, 나는 거울 속의 낯선 여자를 마주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여자가 낯선 이유가 암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시험관이 실패할 때마다 나를 가장 먼저 다그친 건 나였다. 몸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외면한 것도 나였다. 암 진단을 받은 밤, 검색창에 재발률을 입력하며 자신을 공포에 밀어 넣은 것도 나였다.

암과 싸우는 데는 8번의 항암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내 편이 되는 일은 훨씬 오래 걸렸다.


이 책은 그 긴 싸움에 대한 기록이다. 거창한 해답 대신, 반복할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적었다. 108배로 새벽을 여는 법, 망가진 몸과 화해하는 법, 쉰의 나이에 처음으로 나를 그리기 시작한 이야기. 봉순이는 내가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은 손잡이다. 그리고 아마 당신에게도 하나쯤 필요할 것이다.

당신이 암 환자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한 번쯤,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있다면 이 책과 함께해 보기를 바란다.

이제 전장에 들어간다. 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안에 있었다.



[독자 안내]
이 브런치북에는 제가 이전에 브런치에서 연재했던 <암 이후, 나를 지키는 방법>의 일부 내용이 새로운 흐름과 호흡으로 다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나눠주신 경험과 응원, 질문들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동일한 이야기라도 더 깊고 넓은 시선으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미 읽어주셨던 분들께는 더 서사적이고 단단해진 ‘확장본’이 되어드릴 것이고, 처음 만나시는 분들께는 암 이후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데 조용한 동행이 되어드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