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01.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날

진단의 순간, 마음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by 봉순이

“여기 하얀 점들 보이시죠?”


의사가 가리킨 MRI 화면 위로 하얀 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내 눈에는 번진 얼룩처럼 보였지만, 의사는 그것을 ‘병변’이라 불렀다.


의사의 입술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그 소리는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둔탁하게 뭉개졌다.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피부를 훑는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 시렸다. 손끝부터 서서히 온기가 빠져나갔다.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자 병원 복도가 기우뚱하게 기울어진 것 같았다. 어떻게 계산을 했는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탔는지, 차에 어떻게 앉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19년 4월. 내 삶에 예고도 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유방암 2기였다.

“가슴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의사의 덤덤한 말은 내 가슴을 통과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는 없고, 무게만 남았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는데 형광등 잔상이 무영등처럼 번쩍였다. 잘못 본 거겠지. 다시 검사하면 아무 일도 아닐지 몰라. 부정은 마지막 방패였다. 하지만 손은 이미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유방암 2기 생존율. 재발 확률. 절제술 후기

검색창에 글자를 입력하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심장은 점점 빨라졌다. 누군가는 ‘괜찮다’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순식간에 4기로 진행됐다”라고 적었다. 타인의 문장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나는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


“열어봐야 정확한 병기를 알 수 있습니다.”


설명은 들리지 않고, 마음만 쿵 내려앉던 날

의사의 설명은 내 안에서 다른 문장으로 바뀌었다.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환우 카페의 글들은 위로가 아닌 시한폭탄이었다. 수술대에 올랐다가 전이가 심해 그대로 봉합했다는 사연을 읽는 순간, 심장이 벼랑 끝으로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왜 하필 나일까.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몸은 이미 여러 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슴에 잡히던 딱딱한 멍울, 힘이 들어가지 않던 오른손, 가슴 깊숙이 울리던 ‘징’ 하는 불길한 감각.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렇겠지’라며, 몸이 올린 경고를 서랍 속에 밀어 넣었다. 그 자책이 천천히 차올랐다.


나는 밤새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 잔상은 꺼지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꺾이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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