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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01.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날

진단의 순간, 마음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by 봉순이

“여기 점들 보이시죠?”


의사가 MRI 화면을 가리켰다.
하얗게 번져 있는 점들을 몇 개 짚어 보여줬지만 내 눈에는 근육, 지방, 병변이 모두 똑같은 얼룩처럼 보였다.
설명은 길었지만,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료실 문을 어떻게 나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5년 전, 나는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 무서운 병이 내 몸, 내 가슴에 있다니.
게다가 의사는 “가슴 전체적으로 퍼져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설명은 들리지 않고, 마음만 쿵 내려앉던 날

그날 밤 나는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고, 아무 표정도 짓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본 거겠지. 다시 검사하면… 아무 일도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이미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유방암 2기 생존율’
‘유방암 재발 확률’
‘유방 절제술 후기’


스크롤을 내릴수록 내 가슴은 쿵, 쿵, 바닥으로 꺼져 내려갔다.


“뭐부터 정리해야 하지… 식구들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아무 정보도 없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몰라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2기라고 해도 수술을 하고 몸을 열어봐야 정확한 병기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 말은 ‘지금은 2기지만, 실제는 다를 수도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불안은 더 커졌다.


유방암 카페에 들어가 보니 수술대까지 올랐다가 전이가 발견돼 “수술조차 하지 못하고 내려왔다”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그 무게는 곧 자기 불신으로 번져갔다.


“왜 하필 나일까. 왜 내게 이런 병이…”


최근에 겪었던 갈등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가슴에 몽울 같은 게 잡혔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기에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 전에는 오른손이 쥐어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하고 무시했다.

그리고 최근, 가슴에서 ‘징’ 울리는 느낌이 있을 때조차

나는 “잠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이제 와서 보니 나의 몸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보지 않았고, 보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내 몸의 말에 너무 오랫동안 무감각했다.

복기하면 할수록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 커져만 갔다.


그날 이후 나는 핸드폰에 의지하며 유방암 검색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나는 정보라는 바다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 바다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1부-02. 3개월의 기다림 동안, 내가 무너졌던 방식>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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