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02.180만 원짜리 사탕 결제한 밤

정보가 아니라 공포를 더 많이 만났던 시간

by 봉순이

수술 날짜는 3개월 뒤로 잡혔다. 정보보다 공포를 더 많이 만났던 시간이었다. 의사는 그것이 최선의 일정이라 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시간은 피가 마르듯 길게 늘어졌다. 조직검사를 했던 부위가 조금이라도 욱신거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그때 떼어낸 암세포가 지금쯤 혈관을 타고 온몸을 떠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무렵부터 나의 하루는 정해진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마치 출근하듯 컴퓨터를 켜고 ‘암’이라는 단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잠수했다. 처음엔 도움이 되는 줄 알았다. 정보를 많이 알수록 덜 무서울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눈은 희망적인 수술 성공담을 비껴가기 시작했다. 대신 재발 후기, 전이 사례, 의료 사고 같은 어두운 기록들에만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정보가 아니라 공포를 더 많이 만났던 시간


‘2기인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4기더라.

그 교수님, 요즘 실수가 잦다는데…

재발률이 생각보다 높아서 잠이 안 온다.’


활자 하나하나가 송곳이 되어 심장에 박혔다. 수술대에 오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수없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지쳐 있었다.


“인터넷 카페로 출근 좀 하지 마. 머리만 더 복잡해지잖아.”




남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을 수 없었다. 더 알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믿음이 나를 더 깊은 심해로 끌고 내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구해줄 기적의 물건’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암 환자 전용 보습크림, 혈액순환 양말, 면역 찜질팩, 이름도 처음 듣는 고가의 건강보조제들…. 장바구니에 물건이 쌓일수록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마치 전장에 나가기 전, 갑옷을 하나씩 껴입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벼락 맞은 나무에서 추출한 음이온 성분.”


가격도 이름만큼이나 벼락같았다. 작은 사탕 한 통에 180만 원. 한참을 화면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결제하기’ 버튼 위에서 멈춰 섰다.


“여보, 이거 사야 할 것 같아.”

“그게 뭔데? 얼마라고?”

“…180만 원.”

“사탕 몇 알에 180만 원이라고? 제정신이야?”


남편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돈이 문제야? 내가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지.”


히어로 장비를 모으듯, 불안을 덮을 무언가를 찾았다

그 말은 남편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짧은 진동과 함께 카드 승인 문자가 도착했다. 그 작은 떨림이 마치 끊어지기 직전의 생명줄을 붙잡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 도착한 커다란 상자를 열었다. 면역용, 수면용, 스트레스용 사탕들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겨 한 알을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허무할 만큼 평범한 맛이었다.


‘벼락 맞은 나무니까… 내 몸 안에서도 벼락이 치겠지.’



간절히 상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도, 벼락도, 마음의 평화도 없었다. 입안에서 사탕이 녹아 사라질수록 공허함은 더 또렷해졌다. 발치에는 수북한 포장지 조각이 쌓였고, 나는 그것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사탕을 산 것이 아니라, 잠시 숨 쉴 틈을 줄 가짜 위안을 비싼 값에 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조용히 사탕 통을 닫았다.


“그래. 이제 도망치지 말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지만, 더는 휴대폰 속으로 숨지 않았다. 검색 대신 준비를 시작했다. 수술하러 가자. 그날, 나는 공포 대신 준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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