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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01.조금 다르지만, 살아 있는 나의 몸

흐르듯이 찾아온 회복과 몸과의 화해

by 봉순이

수술 당일, 여덟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몸이 접힌 채 회복실로 옮겨졌다.

가슴을 들어내고, 전이를 확인하고, 복부 살을 떼어 가슴을 복원하는 과정까지 말로 들으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절개와 이어 붙임, 그리고 다시 살아나야 하는 조직들이 있었다.


병원에서 보낸 일주일은 말 그대로 지옥을 통과한 시간이었다.
의료진이 내 몸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현실의 무게가 온몸을 눌러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아픈 곳들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병원에 가는 횟수도 줄었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네.”


몸은 분명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나는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복원된 오른쪽 가슴은 배에서 떼어온 살과 혈관으로 만들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작은 당김이 스치고, 기침을 하면 낯선 울림이 몸속 깊은 곳에서 퍼져 나왔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내 몸속 어딘가에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들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말했다.


“당기고 쑤시는 건 몸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통증은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거울 속의 ‘나’였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유두 없이 도드라진 살덩이. 복부를 가로지르는 길고 묵직한 흉터. 그 위로 은근슬쩍 자라난 배의 솜털들.

문득 프랑켄슈타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낯설고, 두렵고, 안쓰럽고, 서글펐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이 먼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 문득, 거울 속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배워야 했다.

받아들임이란 흉터를 ‘견디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몸을 ‘다시 안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거울 속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사람은 결국 나뿐이라는 것을.


유착된 조직이 당기고 쑤시면 나는 조용히, 나에게 속삭였다.


“아… 당기네. 그래, 살아 있구나.”


그러다 어느 날은 작은 농담도 할 수 있었다.


“뱃살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네 없었으면 몸의 균형이 난리 났을걸?”


그 말을 하고 나면 낯설기만 했던 몸이 조금은 내 편이 되는 것 같았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완료’되는 일이 아니다.

조용히, 조금씩 내 몸을 다시 사랑해주는 시간들이 쌓여 흐르듯 찾아오는 것이다.


수술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몸의 균형은 완전히 맞지 않는다.
살이 빠져도 오른쪽 가슴은 줄지 않고, 눕는 방향이 바뀌면 당김이 여전히 찾아온다.


그래도 생각한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이만큼이라도 내 몸을 지켜낸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지금 내 몸은 통증과 균형, 불안과 희망, 좌절과 회복이 뒤섞인 이 시대의 가장 근사한 작품 같다.


나는 오늘 거울 앞에서 아주 조용히, 아주 천천히 말한다.


“그래.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살아 있는 아름다운 나의 몸이다.”





가슴을 다시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렸지만, 내 몸의 여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용히, 아주 느리게 또 다른 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편에서, 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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