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D-59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줬다.
내둥 안 뛰다 갑자기 왜? 무릎 나가, 발목 나가, 그냥 걷기나 해. 필라테스는 어때? 아침 공기가 그렇게 안 좋다잖아 등등등.
이런 걸 '애정 어린'이라고 하는 걸까. 뛰는 걸 워낙 싫어해 내 평생에 달리기는 없다고 확신하며 살아온 나지만 그들은 그런 나보다 더 나의 달리기를 못미더워했다. 안 하던 걸 해보겠다는 나의 도전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보려는 나의 모험을 저어했다. 아니, 이보세요들! 내가 용기를 내보겠다니까요?!
첫날 살고있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1.7km를 뛰었다. 며칠을 그렇게 뛰다 큰 마음 먹고 옆 아파트 단지까지 진출해 2.5km를 뛰었다. 슬슬 거리 늘리기에 욕심이 생겨 3km를 뛰었는데 더 멀리 나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뛰었던 길을 또 돌거나 사이사이 난 작은 길을 파고들어 달렸다. 집을 가운데 놓으면 반지름이 겨우 500m나 될까?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요리조리 뱅글뱅글 뛰었다. 달리기 어플의 동선 코너를 보면 겨우 손바닥만한 공간 안에 내가 달린 길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했다.
아직 서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괜히 안 가 본 곳까지 갔다가 출근준비에 늦으면 어쩌나, 아직 어두운데 묻지마 미친인간 만나면 어쩌나, 횡단보도가 많으면 어쩌나, 차가 많이 다니면 어쩌나, 보도블럭이 깨져있으면 어쩌나, 강아지가 달려들면 어쩌나, 이 끝도 없는 어쩌나들.
달리는 횟수가 늘고 거리가 길어질수록 답답해졌다. 똑같은 길이 지겨워졌고 뛰다보면 원 한 가운데로, 즉 출발지로, 그러니까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집으로 수렴하는 느낌이 영 갑갑했다. 이런 식으로 몇 킬로나 뛸 수 있을까? 다르게 생긴 땅도 밟아봐야 하지 않을까? 오르막도 올라봐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멀리, 내가 모르는 곳으로도 뛰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길을 달렸다. 집에서 2.8km를 쭉쭉 달려갔다 돌아왔다. 그동안 차를 타고만 지나쳤던 옆동네를 내 몸으로 달려서 가로질렀고, 키 큰 나무가 양쪽으로 길게 뻗은 길을 달렸으며, 진한 풀냄새를 맡았고, 헥헥거리며 오르막 다리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기도 했고,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집게차 옆을 지나느라 매운 공기를 마시기도 했지만 좋았다.
제 시간에 돌아왔고, 누가 납치해가지도 않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집에서 먼 곳을 내 선택으로 달렸다. 쭉쭉, 멀리까지 다녀왔다. 최장거리 기록도 세웠다. 자유로웠다.
내일은 더 멀리, 주말엔 더 더 멀리 달려가야지. 애정어린 조언을 해준 이들의 오래 굳은 자기장이 흩어지기를, 그리하여 그들도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작당에 도전해보기를 소망하면서 달려가야지.
살면서 달리기 정도는 우리 맘대로 해도 되지 않겠어요? 지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