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되는 거구나. 몇 발짝 뒤뚱거린 걸로도 정신이 쑥 빠져나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10km를 달리다니, 이게 되네.
출발할 때 생기던 다리 통증은 준비운동할 때 조금 뛰어본 덕인지 오는지도 모르게 가버렸고, 적절한 페이스와 안정적인 리듬도 순조롭게 몸에 붙었다. 5km까지 가뿐하게 달렸고 6km쯤 지겨워졌는데 7km부터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최면을 걸었다. 8km를 지났을 땐 오늘 처음 먹어본 에너지젤이 근육에 엄청난 기운을 모아놓고 있을 거라 믿었고 9km를 넘겼을 땐 나 이러다 진짜 10km 뛰어버리는 거 아닌가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남아있는 힘을 끌어모아 속도를 더 내보려 용을 썼더니 진짜 10km 완주!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다.
2) 작은별과 얼룩송아지
달리기를 시작할 때 김성우 코치가 쓴 <30일 5분 달리기>를 읽고 코로만 숨 쉴 수 있을 정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번 뛰다 보니 코로 두 번 들숨 두 번 날숨, 그러니까 네 박자로 호흡하는 것이 가장 편안했다.
오늘도 무념무상으로 호흡하며 뛰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마음속으로 '작은별'을 무한반복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언제부터, 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나? 그런데 가만 보니 발구름, 들숨 날숨, 작은별이 아주 찰떡리듬. '반짝반짝 - 촥촥촥촥(발걸음) - 흡흡후후(들숨날숨)'
내 무의식은 어떤 기제로 '작은별'을 가져온 걸까. 고된 몸에 운동가를 붙여주는 시스템은 신체의 움직임과 동일한 박자의 노래를 알아서 찾아내 의식이 인지하기 전부터 가동하는 건가? AI?
마음속에서 노래를 끄고 얼마를 또 달렸는데 맙소사, 이번엔 '얼룩송아지'가 또 무한재생. 핫둘셋넷, 핫둘셋넷,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무의식의 운동가 작동기제에 대해 생각하며 달리다 보니 주크박스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6km를 넘긴 시점이었으니 정상적인 뇌기능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나의 운동가는 믹스 메들리가 되어 '반짝반짝 송아지~ 아름답게 송아지~ 서쪽하늘 송아지~ 동쪽하늘 엄마소~'
3) 사회성 쑥쑥
세 번째 동호회 참석. 오늘은 내 페이스로 첫 10km를 달려보고 싶어 혼자 출발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큰 공원을 뛰다 보면 이쪽저쪽에서 회원들이 달려 나와 '파이팅'을 외쳐주며 지나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답파이팅을 해봤다. '네, 파이팅이요'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목표 달성을 하고 물과 간식이 있는 곳으로 제 발로 가 무려 세 명에게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물도 마시고 스포츠 음료도 마시고 바나나 반 개도 집어 먹었다.
혼자 하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달리기가 마흔둥이의 사회성을 우쭈쭈해주는 운동이었네. 10km 뛴 것만큼이나 크고 놀랍게 자랐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