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D-20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혹 고질병이 될까 걱정돼 정보를 검색해 봤다. 노련한 달림이 유튜버가 바깥쪽 허벅지를 마사지해줘야 한다며 폼롤러 위에 모로 누워 직접 시범을 보였다. 으윽, 하는 소리까지 내길래 뭘 또 저렇게까지, 했는데 따라 하자마자 으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달리는 것만 좋아했다. 준비운동을 하면서도 마음은 벌써 밖으로 나가있기 일쑤여서 여덟 번 하던 동작이 여섯 번, 네 번으로 줄었고 홱홱 돌리던 팔다리도 설렁설렁 대충대충 움직였으며 어떤 동작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자마자 뛰면 근육이 놀랄 것 같아 형식적이나마 준비운동은 했지만 정리운동은 정말 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시간의 압박.
오후엔 어영부영 흘려버리기도 하는 10분이 출근준비를 할 때엔 그날 하루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만큼 절대적인 시간이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 어지간한 일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꼭 필요한 일만 빠르게 처리한다. 고로 정리운동은 다음에...
빨리 씻고 싶다.
50분을 뛰고 들어오면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바로 씻어 개운한 상태가 되고 싶다. 얼굴은 핫핫하게 시뻘겋고 온몸은 땀을 쏟아냈으니 양말 벗고 무릎보호대 풀고 어서 빨리 씻고 싶다. 차분하게 정리운동을 할 겨를이 없다.
씻고 나서 스트레칭을 해보기도 했지만 다시 땀이 나 곤란했다. 그러다 보니 정리운동은 다음에...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와 체육관에서 트레드밀을 달렸는데 운동을 끝낸 한 여자가 꼼꼼하게 정성 들여 털털이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벨트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어깨부터 시작해 등, 허리, 골반, 엉덩이 아래, 허벅지 뒷면 앞면 양 측면, 종아리 위쪽과 아래쪽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여자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마치 의식을 치르는 사제 같았다.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당장 신자 1이 되어 다음 날부터 길 위를 달렸건 트레드밀에서 뛰었건 10분 일찍 마치고 체육관에서 스트레칭을 한 다음 털털이를 한다. 집에선 폼롤러 따위 있으나마나 정리운동 경시자였지만 새로 시작한 이 정리운동은 집 밖에서 달린 끝에 이어지는 루틴이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50분간 종종거리며 뛰느라 근육에 쌓인 피로물질을 10분간 쭉쭉 뻗고 탈탈 털어내는 기분이 생각보다 개운하다. 다시 뛸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작업 같기도 하다. 정리운동이 이런 거라면 책 한 권 읽고, 사람 한 번 만나고, 성질 한 번 부리고, 후회 한 번 하고, 명절 한 번 치르고, 회사의 하루를 끝내고, 연애 한 번 마치고, 병 한 번 앓고 나서 쭉쭉이와 털털이를 한 번씩 해야겠다. 또 한 번 시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