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D-52
어젯밤은 엉망진창이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에 들었다가 콧물이 가득 차 잠에서 깼다. 풀면 차오르고 또 풀어도 또 차오르는 샘물 같은 콧물이여. 그대, 어디에서 그렇게 솟아오르는가.
비몽사몽 급한 대로 콧물을 처리하고 간신히 잠에 들었는데 야구장에 갔던 식구들이 들어오는 소리에 또 깼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와 달리 다정한 가족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잠결에 경기가 어땠는지를 물었고 돌아온 답에 한 번 더 대꾸를 하고 어쩌고 하는 동안 의식이 살아나면서 슬슬 요의가 느껴졌다. 안 돼, 자다 말고 몸을 일으킬 순 없어. 참을 수 있다, 이거 진짜 마려운 거 아니다, 조금만 있으면 아침이다, 했는데 시계가 눈에 들어왔고 하, 12시 반밖에 안 됐어. 콧물도 다시 솟는다고!
화장실에 다녀와 이제 정말 자고야 말겠다, 하며 누웠다. 누웠더니 콧물이 가득해져 일어나 코를 풀었다. 몇 번을 풀고 다시 누웠다. 금세 다시 차올라 일어나 앉아 또 풀었다. 아직 눕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가득. 하... 안 자, 안 자!
스탠드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폈다. 한 줄 읽고 코 한 번 풀고, 두 줄 읽고 하품 한 번 하고, 코 한 번 더 풀고 책 몇 쪽 읽고 꾸벅거리며 졸다 깜짝 놀라고, 정신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고, 고개 흔들어서 콧물 더 솟고.
어느새 평소 일어나던 4시 반이 되었다. 졸음이 밀려왔다. 토요일이니까 조금 늦게 뛰지 뭐. 콧물 차든 말든 나는 잔다, 하고 잠에 들었다.
5년쯤 전이었다면, 그러니까 젊은 기력에 몸 아낄 줄 모르던 때였다면, 한쪽으로 쏠려있던 에너지를 고르게 펴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역꾸역 참아왔던 화를 쏟아내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운동을 하던 때였다면 4시 반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달렸을 것이다.
한 때는 그런 운동을 했다. 몸을 고통의 끝으로 몰아붙여 괴로워하는 걸 보고야 마는 운동. 그때 나는 왜 내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그냥 달리기가 좋다. 잘 달려지는 날도 물론 기분 좋지만 어설픈 보폭도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처음엔 말도 못하게 어설펐다는 것, 그럼에도 매일 새벽 달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더 좋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달리기는 못했지만 이 일지를 쓰면서 나의 어떤 부분이 조금 나아졌을 테고, 내일 동호회에 나가 한두 명에게라도 인사를 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 부분이 또 단단해지겠지.
꼭 나아지는 무엇이 없어도 상관없다. 내일 나는 달리는 1시간 동안 숨이 차고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