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D-10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나는 이렇게 먹었다.
- 새벽에 일어나 공복에 커피 큰 한 잔
- 아침에 출근해 공복에 커피 큰 한 잔
- 오전에 일하다 공복에 커피 큰 한 잔
- 점심으로 떡, 빵, 밥 중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서
- 오후에 일하다 커피 큰 한 잔
- 저녁으로 대략 밥 또는 맥주 종종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당장 건강하고 싶어졌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오래 뛰고 싶으니까. 그리하여
- 달리느라 새벽 공복 커피는 안 마신다
- 달리기를 하고 나면 아몬드유에 식물성 단백질 파우더를 타 마신다
- 배가 불러 아침과 오전 커피 양을 2/3씩으로 줄였다
- 밥 먹을 일이 생기면 '아주 쏙쏙 흡수해 버리겠어!'하고 잘 먹어둔다
- 다음 날 새벽 달려야 하니까 맥주는 '가끔'으로 줄였다
근육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면 '찰랑 촐랑 말랑 흐물' 이런 수식어로 40년 몸인생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다.
사주팔자에 근육제로가 버티고 있는 건지. 돌 씹어 먹을 만큼 몸 좋았던 사춘기 시절, 다리에 밴 알 근육 없애겠다며 콜라병 열심히 굴리던 친구들 사이에 앉아 종아리 근육 좀 튀어나와 보게 하려고 아무리 힘을 주고 용을 써도 내 다리님은 꿈쩍없이 찰랑거리기만 했다.
복근은 어떠했던가. 남들 11자 근육 만들고도 남을 만큼 집중 운동을 해도 내 배에는 미세한 막 정도만 생길 뿐이니, 탄탄한 몸으로 살아보는 소원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얼마 전,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스트레칭을 하는데, 아니 이건! 설마... 근육...?
다리를 펴고 앉아 발끝을 몸 쪽으로 당겼다 반대쪽으로 쭉 뻗었더니 종아리가 딴딴해지면서 슬몃 타원형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내 몸에 근육이 생겼어.
그러고 보니 석 달을 달렸는데도 몸무게는 1kg도 안 되게 줄었다. 대신 종아리가 딴딴해지고 (단단이 아니다. 정말 '딴딴'이다!) 말랑 흐물거리기만 했던 복부 안쪽이 조금 단단해졌다.
회사에서 버티는 힘도 강해졌다.
출근해서부터 피곤하기 시작해 퇴근할 즈음에는 발가락부터 눈썹까지 줄줄 흘러내렸는데 달린 뒤로는 오후가 되어도 허리 꼿꼿하게 앉아있어 나 혼자 깜짝 놀라곤 한다.
복도를 몇 발짝 걷기만 해도 영혼 있게 좀 걸으라는 잔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건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의 모든 동작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 정신 붙잡고 걷는다.
결론.
달리기를 하면서 전보다 잘 챙겨 먹고, 찰랑이 살이 탄탄해지고, 몸 안에 기운이 차고 있다.
1983년에 태어나서, 2023년 올해 달리기 시작했으니까 깔끔하게, 2083년 100살까지만 달려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