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Happy Birthday To Me

by 이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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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 D-4


어제 새벽, 공황발작으로 달리기에 실패한 뒤 저녁부터 강렬하게 궁금했다.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일단 4시 반에 일어나긴 했다. 무책임한 궁금증 시작. 내가 달릴 수 있을까, 없을까. 달리려나 안 달리려나. 답을 기다리며 30분을 보냈다. 50분을 뛰는데 30분을 보냈다는 건 뭐, 30분이나 나에게 나의 답을 설득했다는 거지.


달리지 못했다는 실패감과 다시 발작을 겪지 않으려면 쉬는 게 나을 거라는 저항을 모두 내 것으로 토닥이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주차장에서 본 단풍나무의 수피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거칠게 나이 들어 멋대로 조각난 나무껍질. 제자리를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탈하려 삐죽 솟은 것 같았고 미련 없이 홱 고개 돌리는 몸짓 같기도 했다. 괜찮아 보였다. 조금 멋있었다. 있어야 할 만큼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였을 테니까 이제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이 든 껍질 안으로 보다 연한 빛깔의, 아직 보드라운 수피가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니까 아무 문제없음.


"그때도 새로 태어났겠군요." - <끝내주는 인생> 158쪽, 이슬아


작가 이슬아는 어느 날 낮잠에서 깨었을 때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신비로운 기분을 느낀 그날을 생일로 정하고 '현'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아프셨겠군요." 현의 대답.


현은 중학생 때 허리를 심하게 다쳐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새로 배워야 했다. 이슬아는 생각한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늘 아프고 난 뒤의 일이라고.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을 읽으며 '생일은 몹시 아픈 날이기도 하다'는 현의 말에 큰 위안을 얻는다.

어제 새벽, '어떤 생각'이 떠올라 갑작스레 공황발작이 왔고, 혼란이 잦아들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참 더럽게 안 낫네, 이거'였다. 지혜로운 친구 똘라뷔는 다시 뛸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내게 말했다. 좋은 현상이라고, 그렇게 '어떤 생각'을 직면하면서 한 꺼풀씩 벗어 보내버리고 새로 나면 된다고.

이런. 어제의 단풍나무와 똘라뷔, 오늘의 현이 내게 같은 말을 각자의 버전으로 들려주네.


발작 이후 사라져 오늘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마음이 이 글을 쓰는 사이 슬며시 들어와 앉았다.

축하해, 오늘은 내 생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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