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난리났다

by 이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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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 D-2


대회 이틀 전, 오늘 달린 거리 0km.


난리났다. 어제 새벽 일어나 보니 어째 목이 좀 칼칼한 것이 '혹시?' 느낌이 좋지 않더니만 종일 증상이 가라앉질 않았다. 몸님, 장난은 오늘까지만 하시면 안 될까요? 저 지금 많이 불안하거든요. 감기는 정말 안 돼요. 제가 대회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흑.


이렇게 재빠르게, 자발적으로 약을 사 먹은 적이 없었다. 병원에 가기는 민망한 정도여서 약국으로 달려갔다. 증상과 정도를 들은 약사님이 자꾸만 고개를 갸웃, 선반으로 향하던 손길을 멈칫거리다 결국은 편도염약과 피로회복제를 주셨다. 알약 한 알에 '빨리 나아주세요', 다른 한 알에 '내일이면 멀쩡해 주세요', 피로회복제에 '그동안 몸님께 저지른 죄, 용서를 구합니다' 간절함을 담아 정성껏 삼켰다.

오후에 반짝 좋아지더니만 밤이 되니 컨디션이 뚝뚝뚝 떨어졌다. 오, 제발.


목이 째지는 듯 아프코 콧물이 가득 차 숨을 쉴 수 없었다. 잠에서 깼다. 1시 반. 노란 콧물을 몇 번이나 풀어냈다. 바짝 마른 목으로 물을 삼키려니 목구멍이 몹시 아팠다. 안 돼, 정말. 이러지 마.


대회에 나가(기만이라도 해야겠다!) 조금이라도 즐겁게 뛰기 위해서

지금 나의 무조건 최대 집중 긴급 신속 총력 과제는 '회복하기!'


1) 달리기

- 말할 것도 없이 생략.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잤다. 잘했어.

2) 옷 입기

- 어제 아침에 좀 추웠잖아. 긴 팔 입고 카디건까지 입어. 잘했어. 창피하긴 하지만 꼬마 친구가 하던 손수건 목도리도 하고 가자. 뭣이가 중헌디! 털잠바는 좀... 그런가?

3) 먹기

- 좋은 영양소를 아주 왕창 몸에 넣어주자. 아침에 일어나 작은 사과 한 알을 먹었다. 비타민 충전, 이거 꼭 필요한 거야. 잘했어. 다른 영양소도 필요해. 온갖 비타민과 무기질과 식이섬유와 기타 등등이 다 들어갔다는 식물성 단백질을 아몬드유에 타 마셨다. 이 정도면 부족하진 않겠지. 잘했어. 일단 배부르니까 먹는 건 멈추고, 어제 사온 약을 다시 정성스레 삼켰다. 좋았어. 잘 부탁해. 가만, 기관지에는 뭐니 뭐니 해도 오미자지. 텀블러에 오미자 원액을 담았다. 사무실에 가서 따뜻하게 마시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좋았어. 저기 바나나도 있잖아? 바나나도 탄수화물이랑 뭐랑 뭐랑 많이 들어있댔는데. 일단 챙겨가자. 오후에 먹으면 돼. 좋았어. 든든해. 아, 한방감기약은 꼭 마셔야 해!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서 출근길에 홀짝홀짝 마시자고. 맞다! 고용량 비타민 가루도 챙겨가자! 전에 입병 하루 만에 나았잖아. 어쩌면 감기도 한 방에 아주 끝내버릴 수도 있어!


화장도 안 하고 옷도 간단하게 입어 남자보다 빠른 출근준비가 나의 큰 자랑 중 하나였는데 오늘은 꼭 수능 치르는 자식 아침밥 먹이고 도시락 싸주는 간절한 엄마 같은 표정과 마음으로 분주했다. 절대 아프면 안 돼. 좋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목은 좀 나아졌다. 콧물은 계속 풀고 있다. 팔다리가 으슬으슬 춥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점심엔 뜨끈한 굴국밥을 먹을 거고, 밥 먹은 다음엔 약이랑 고용량 비타민, 오후엔 바나나와 오미자차를 먹을 거다.

손수건 목도리도 잘하고 있고, 회사 전기요금 때문에 골치 썩는 시설팀 몰래 개인 난방기도 틀고 있다. 퇴근도 일찍 할 거고 저녁도 잘 먹을 거고 잠도 많이 잘 거다.


내 생애 첫 마라톤 대회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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