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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Apr 10. 2024

보이스 8

지갑과 카드

다시 지하 주차장을 가서 시동을 켠다. 아라는 오늘 뭔가 잘 안 되는 날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일 다시 은행에서 긴 기다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주차장료를 내기 위해 카드를 꺼내려는데,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슈퍼 가서 뭔가를 샀었던 그 카드가 없다.
'대체 오늘 제게 왜 이러는 거죠?'
지하 주차장 내 아까 지갑을 흘린 곳이 아닌 다른 곳에 흘렀나 해서 차에서 내려 주차장 바닥을 훑었다. 없다. 할 수 없이 점심시간 들렀던 커피숍과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나의 덜렁댐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카페에서 슈퍼마켓에 들러 그 카드를 마지막으로 사용했으니, 슈퍼마켓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휴대전화로 아까 들렀던 슈퍼마켓의 전화번호를 검색한다. 전화를 여러 통해도 받지 않는다. 바빠서 그러나 싶어 그 뒤 또 여러 번 했다. 전화가 안 되니 직접 가는 게 더 빠르겠다 싶어 점심시간 들렀던 곳으로 다시 운전했다. 카페 맞은편에 주차 공간이 있어 주차하고 혹시 모르니 카페에도 물어봐야겠다 생각하고 갔다. 슈퍼마켓이 확실한 듯했지만 카페에 묻기라도 해야 아라는 마음이 놓였다.
"혹시 보라색으로 된 카드 보셨나요? 점심시간에 제가 여기 들러 커피와 쿠키 샀었거든요."
"오늘 카드 없었어요. 어제 고객이 분실한 카드는 있는데, 이건가요?"
"아니요. 감사합니다. "
카페에서 30미터 걸어가면 있는 슈퍼에 갔다. 아까 있었던 중년의 아저씨가 아니라 10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학생이 있다.
"혹시 카드 분실물 없었어요?"
그는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더니 없다고 한다. 확실하게 찾는 것이 아니라 나무늘보의 느낌으로 천천히 살짝만 들춰보는 수준이었다.
"사장님 어디 가셨나요? 사장님이 아주 바쁘신가 봐요?"
"네, 아주 바빠요."
"그래도 전화를 받으실 수는 있을 텐데 못 받을 정도로 바쁜가 봐요?"
"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게 전화번호로 계속 전화했는데 안 되었군요."
"네."
"그래도 사장님께 직접 물어보고 싶어요. 사장님이 따로 보관했을 수도 있잖아요. 가게 전화는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가게로 전화를 한번 해볼게요. 소리가 안 울리는 것은 아니죠? 아까 전화 엄청나게 했는데 아무도 안 받더라고요"
"아 가게 전화 고장 났어요."
"그럼 배달 주문 같은 건 어떻게 하나요?"
"사장님 핸드폰으로 하면 됩니다."
"아 그렇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카드의 행방에 관해 묻고 싶은데 전화를 대신해줄 수 없을까요? 이 근처에 사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길에 들린 곳이라서 다시 오기 힘들어요. 대신 사장님 핸드폰으로 물어봐 주세요"
"사장님이 무척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아요."
"그럼 제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세요. 지금 사장님이 바쁘시다니 전화는 안 하고 문자로 카드에 관해 물어볼게요. 바쁜 일 끝나고 문자 보시면 답장 주시겠지요."
그제야 사장님 번호를 적어준다. 사장님께 문자를 남겼다.
아라는 이제 마음의 안정이 왔다. 슈퍼마켓 이후 그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카드 분실신고를 할까 말까 고민은 했지만, 카드를 찾을 거라는 묘한 확신에 분실신고는 하지 않는다.
점심때부터 바쁘게 지낸 하루가 벌써 저녁이 되었다. 아라는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반성이 되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아라의 신중하지 못하고 급한 성격 때문에 벌어진 것 같다. 점심시간에 커피와 쿠키를 사고 슈퍼마켓에서 뭔가를 사지 않고 할 일이 많으니 일찍 움직였다면 은행에 늦게 도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가방이 열린 채로 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은행에 필요한 서류가 있다면 인터넷으로 한 두 개 검색해 볼 것이 아니라 은행의 정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보거나 은행에 직접 전화해서 알아봤으면 되었을 것이다.
아라는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본인의 차분하지 못한 성격 때문임을 느끼고 반성했다. 열정적으로 시간을 쪼개가며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은 좋으나 차분하고 이성적인 면이 추가된다면 본인의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고 좋은 일이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차분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하는 많은 일을 체험하고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라가 자책하고 있을 때 문자가 한 통 들어왔다. 슈퍼마켓 사장님의 문자였다. 카드 주워서 넣어놓았으니, 슈퍼에 와서 찾아가라는 문자였다.
’ 그래, 분명 슈퍼 맞다니까. 역시 나의 예감이란 정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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