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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Apr 03. 2024

보이스 7

요동


아라는 급히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숨이 가쁘다.
성인 여자 두 분과 남자 한 분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혹시 지나오면서 지갑 못 보셨어요? 빨간색이에요 "
"저기 있던데요?"
남자가 말한다.
"어디요?"
"저기 주차장 바닥에서요. 바로 저기. 보이죠?"
"아,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지갑을 주워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탄다. 숨찬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1층에 도착했더니 저 앞에 지갑의 행방을 알려주었던 행인 3명이 걸어간다.
"아까는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찾았어요."
아라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심장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고 숨을 못 쉴 거 같다.
은행의 스피드 문 일명 셔터가 3분의 1 이상 내려오고 있었다. 급하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내려왔다. 뛰었다.
'아, 안돼. 들어가야 해'
절반 정도 셔터가 내려왔을 때 엄청난 어른을 만나 허리를 반 이상 꺾은 뒤 인사하는 자세로 급히 문안에 들어갔다.
"앗, 다행이다. 들어왔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라처럼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이들일 수도 있고, 줄이 많아 한참 동안 기다린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라를 바라본다.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 중 딸인 듯한 사람은 내게 시선을 둔 후 본인의 옆에 있던 엄마로 보이는 사람에게 중얼거린다.
"저 사람은 왜 저래?"
그녀 옆에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어깨를 으쓱한다.
은행의 안전요원이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무슨 업무 보실 거예요?"
"새로 개설해야 하는 게 있어요."
"그럼 이쪽 번호판에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
그로부터 시간은 한참 흘러갔다. 아라가 들어갔을 때 꽉 찼던 고객들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아라는 초조해하면서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
번호 울리는 소리만이 은행 안에 들릴 때도 있고, 고객들과 은행직원의 대화가 들리기도 한다. 아라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그들의 대화를 강제로 듣는다.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번호가 울리자 자기 차례인지 한 창구에 앉는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대출 좀 받으려고요."
"무슨 용도로 대출이 필요하신가요?"
"생활비가 필요해서요."
"잠시만요."
직원은 컴퓨터 화면을 계속 보며 자판을 두드린다.
"저 공무원 연금 받고 있는데, 그걸로 대출은 안 되는가요?"
"잠시만요."
"연금으로는 대출이 힘들고, 지금 살고 계신 주택담보 대출은 어떤가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 어떻게 진행될지 더 들으려는 찰나, 옆 창구에 다른 대화가 나의 귀를 가져갔다.
귀 바로 밑 길이의 파마머리를 한 60대 중반쯤 된 여성분이 직원에게 말한다.
"5천만 원 찾을게요."
"무슨 일로 그 돈을 찾으시나요?
"쓸 데가 있어서요."
"실례지만 어디에 사용하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
잠시 침묵하며 생각하던 파마머리의 여성분이 말한다.
"아, 우리 아가 ~"
길게 이유를 설명한다. 아라는 왜 저렇게까지 개인적인 일을 묻는지, 직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라는 직원이 오지랖이 심각하게 넓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여성분에게 이유를 듣던 직원은 잠시 후
"이 종이 작성해 주세요. 현금의 용도를 쓰면 됩니다. 보이스피싱 아니라고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이런 것도 써야 해요?"
"네, 그냥 확인만 되면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라는 놀라서 휴대전화로 검색해 본다. 금융감독원에서 보이스피싱 예방 차원으로 영업점 내부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는 기사를 본다. 1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찾을 때는 '은행 책임자와 면담'을 해야 인출이 가능해지는데, 명백한 사유 없이 현금 인출을 원할 때 은행원이 금감원 지침에 따라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37분쯤 후 아라의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이제야 업무를 볼 수 있었다. 문제가 또 생겼다. 은행에 온 이유는 가족의 은행 업무를 아라가 대신 보는 것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 갖고 오셨나요?"
"네, 여기요."
"아 이건 안 되겠는데요."
분명 아라도 미리 서류를 떼갔다. 뭔가 억울했다.
"네? 가족관계증명서 맞는데요."
"은행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의 기본이 필요해요. 그런데 손님이 떼온 서류 보시면 상세라고 적혀있지요? 기본으로 다시 떼오셔야 해요."
"기본보다 상세가 더 자세하니 좋은 거 아닌가요?"
"개인정보 보호상, 은행에서 많은 내용을 알 필요 없다고 기본으로 방침이 내려왔어요. 죄송하지만 이 서류로는 업무를 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라는 인제야 서류 중심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가족임이 확인만 되면 될 것을 정확한 그 서류로만 접수가 되는 세상이다.
"저 이 업무 은행 시간 전에 보기 위해 주차하고 힘들게 들어왔는데, 너무 허무하네요."
아라는 급히 뛰어오다 지하 주차장에서 신분증, 현금, 카드 등이 든 지갑을 분실할 뻔했다는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라의 머릿속에는 오늘 은행 업무를 못 봐도 직원에게 하소연의 말을 하고 싶었다. 융통성 없는 은행에 그냥 쓸모없는 하소연하고 싶었다.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은행에 들어온 줄 아세요? 은행 마감 전에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운전하고 공영주차장 1층에 주차 공간이 없어 힘들게 지하 2층에 주차했다고요. 몇 분 안 남았기에 은행 마감 시간 전에 들어가기 위해 열린 가방을 닫을 시간도 없이 급하게 뛰다가 가방 위에 있던 명함, 립스틱 같은 물품이 떨어졌다고요. 그 순간 은행 업무 보고 다시 주우러 올까. 누가 가져가기나 할지 짧은 시간 고민까지 했다고요. 그래도 떨어진 물건이 사라질 수 있으니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물품을 주우러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주웠어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1층에서 내려 은행 쪽으로 걸어가다 열린 가방을 닫으며 가려는 데 뭔가가 허전하더군요. 가방 안에 뭔가가 사라진 겁니다. 분명 떨어진 물품은 한 곳에 모아져 있어서 주워 왔는데, 왜 비어있는지 잠시 생각했어요. 예전 내 가방 안 모습과 비교해서 연상기법으로 뭐가 사라졌는지 기억해 냈다고요. 바로 작은 빨간 지갑이었어요. 제일 중요한 지갑이 없어진 겁니다. 엘리베이터가 마침 1층에 머물러있어 타고 내려갔어요. 제발 바닥에 있어라. 누군가가 주워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카드가 있었지? 카드 분실신고 은행 업무 끝나고 해도 될까? 주운 사람이 먼저 사용해 버리면 어쩌지? 그렇게 한 번, 총 두 번이나 주차장 지하를 뛰어가는 일까지 있었다고요. 다행히 제 가방 안 물건은 다 찾았어요. 혹시 아까 저를 봤는지 모르겠는데, 셔터가 반 내려갔을 때 림보하듯 제가 들어갔었거든요. 셔터 닫히기 전 은행 내부로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류가 너무 자세하다고 다시 서류 준비해서 내일 와야 한다니 너무 속상하네요.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허무해요. 허무하게 주차료만 내야 하네요'
아라는 이 말을 마음속으로만 내뱉는다. 지금 상황에서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은 당연히 쓸데없는 말이다.
마음이 요동친다. 그냥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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