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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Jun 12. 2024

보이스 17

<춘재, 슈퍼 아저씨>


<춘재, 슈퍼 아저씨>
춘재와 영철은 오늘도 슈퍼마켓에 나와 물건을 판다. 남들이 볼 땐 그냥 말이 별로 없지만 항상 함께하는 부자 사이이다. 영철은 원래 00 공고 3학년 재학 중인 학생이지만, 슈퍼마켓을 찾는 사람들은 영철이가 고등학생인 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슈퍼에 오면 항상 영철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철이는 무단 지각, 무단 조퇴, 무단결석을 습관적으로 한다. 영철이의 담임 선생님은 무단이 잦은 영철이를 처음 두 달간은 윽박질러도 보고 벌점도 주고 했으나, 영철이와 아버지라는 사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영철이는 자기만 갖고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것 같은 00과목 선생님이 기분 나빠 처음으로 무단조퇴를 했다. 막상 학교를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처음 며칠간은 피시방에 가서 게임만 10시간 했다.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와도 그냥 받지 않았다. 밤에 집에 가면서 아빠와 엄마가 난리가 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가니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주었다. 분명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텐데 반응이 이상했다. 영철이는 그다음 날도 학교가 가기 싫어 안 갔다. 엄마, 아빠는 두 번 정도 깨우면서 학교 가라고 했으나, 안 간다고 하니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갔다.
영철이는 친구도 없다. 중학교 시절부터 반 친구들은 영철이를 투명 인간 대하듯 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봐주는 친구 한 명도 없었다. 소위 말하는 노는 친구도, 모범적인 친구도, 평범한 친구들도 모두 영철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냥 같은 반이라는 공간에 있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학교 시절에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기술실, 미술실, 강당, 음악실 등으로 혼자 이동했다. 엎드려 자거나, 움직이거나 뭘 해도 항상 영철이는 존재감이 없었다. 자리에 없어도 선생님들이나 반 친구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간혹 학급 단위의 간식 등을 받을 때 누가 한 명 못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00과목 선생님이 자는 영철이를 자꾸 깨운다. 말을 걸고 뭔가를 하게 했다. 귀찮고 신경질이 난 영철이는 막상 무단으로 나오고 결석도 하지만 집과 슈퍼마켓 외에는 갈 데가 없다. 아무 말 없이 슈퍼마켓 가서 아빠 옆에 서서 슈퍼마켓 계산을 돕는다. 아들이 학교를 갔는지 안 갔는지 춘재는 분명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하루 종일 저 두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한다면 그들이 계산대에 같은 자세로 가만히 앉아있는 장면만 찍을 확률이 대부분이다. 손님이 와야지만 자세가 바뀐다. 춘재가 외출하거나 배달하러 갈 때도 동선은 달라진다.
둘 다 친절한 성격은 절대 아니다. 둘 다 무뚝뚝하고 표정이 굳은 채 미소 짓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근처에 있는 아파트나 주택 사는 사람들이 이 슈퍼에 오면 그냥 무뚝뚝한 아빠와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물건 사는 데 큰 지장 없고 말없이 계산만 해주는 스타일이니 사람들은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낀다. 이곳을 찾는 주민들에게 두 사람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학교를 무단으로 빠진 후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하루에 2, 3번 정도 왔다. 영철이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엄마가 주로 받는다. 엄마는 항상 죄송하다며 내일은 보내겠다고 하지만 다음 날도 영철이는 학교를 가지 않는다. 나중 담임 선생님이 학교는 어떻게든 오라고 간곡히 요청하셔서 학교 갔다 그냥 오거나 점심 먹고 난 후 늦은 시간에 학교 갔다. 2학기가 되자 60일 정도 무단결석했다고 담임 선생님이 전화 왔다. 그러면서 담임 선생님이 부탁하셨다.
"어머니. 지금 영철이 고3인 거 아시지요?"
"네, 애가 학교를 안 가서 죄송합니다. "
'영철이 고3, 그것도 시간이 흘러 2학기입니다. 몇십 일 지나면 유급되는 규정이 있어요. 만약 영철이가 몇십 일 결석하게 되면 내년에 다시 고3 생활을 해야 해요. 영철이가 유급되면 후배들과 학교 다시 잘 다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영철이가 2년 반을 다닌 게 너무 아까워요."
"네, 그렇지요. 하지만 영철이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애가 말을 영 안 듣네요. 자기만의 세상 속에 빠져 사는지, 대체 얘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고3 졸업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는데, 늦게라도 학교 오면 결석은 아니니 유급당하지 않게 부모님이 도와주세요. 깨워주시고 학교 한 시간이라도 가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독감, 코로나19 검사를 하면 출석 인정 결석이 됩니다. 혹 영철이에게 열이나 기침 등 여러 감기 증세가 있으면 병원 가서 검사를 하게 하세요. 진료 확인서나 진단서 등 검사했다는 확인 서류를 사진 찍어 제게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전송해 주심 그날은 출석 인정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영철이에게 이렇게 관심을 주시고 애써주셔서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
"어머니, 꼭 영철이 졸업식에 오셔야지요. 영철이 반드시 졸업할 겁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고3 졸업은 꼭 시킬게요."
1시간 넘는 통화에 감동한 엄마는 어떤 경우라도 고3 졸업은 시키겠다고 말했다. 엄마와 담임 선생님의 통화를 춘재와 영철이는 영혼 없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담임 선생님이 출근하기 전 들르거나 집이나 슈퍼마켓으로 전화를 하도 많이 해서 영철이는 할 수 없이 몇 시간, 아니 1시간이라도 학교에 가서 출석 체크하고 돌아왔다.
춘재와 영철은 부인이자 엄마인 보미에게 말하지 못하는 둘만의 비밀이 있다. 오늘 춘재의 다리가 유독 욱신거린다. 슈퍼마켓에 앉아 있거나 서있을 때는 모르지만 배달하러 온 춘재를 본 사람은 깜짝 놀란다. 왼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다. 왼쪽 허벅지 부분이 손상이 많이 가서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진통제를 매일 먹다시피 한다. 평생 왼발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31살 때 깡패들에게 집단으로 맞았다. 10시간 정도를 맞은 춘재는 만신창이가 된 채 기절했다. 춘재는 5명에게 10시간을 죽도록 맞았는데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은 붙어있지 않은가? 춘재의 부인은 어느 날 남편이 병원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숨을 안 쉬어지고 걸을 수가 없었다. 당시 중1이던 영철이가 가출해서 생사를 모르는데, 남편마저 병원 응급실에 심각한 상태로 있다고 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웃 주민의 부축을 받아 왔는데,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병실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처참했다. 대체 어디서 저렇게 맞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경찰도 오고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인상착의도 기억을 못 한다는 말만 계속했다. 처음 본 사람이고 아무 이유 없이 때렸다고만 하니 경찰은 CCTV나 목격자를 찾았으나 목격자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CCTV나 근처 블랙박스 차를 찾았으나 이상하게 없거나 고장 났다. 어떻게 된 것인지 폭행의 가해자를 찾을 단서를 못 찾았다. 발자국, 담배꽁초, 폭행 도구 등도 싹 다 치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인 등과 같은 강력범죄가 잦아 경찰들은 증거도 나오지 않는 사건에 관심이 사라졌다.
경찰에게 말 못 하는 이유가 있나 해서 보미는 남편의 몸이 좀 좋아졌을 때 폭행의 이유를 물어봤다. 춘재는 길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여러 명의 남자가 달려들더니 창고 같은 곳에 데려다 놓고 돈도 뺏은 후 죽도록 때렸다고 한다. 다 때렸는지 버리고 갔다고 한다. 남편을 죽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다리병신으로 만들어 놓은 이들에게 평생 저주를 퍼붓는다. 아들도 가출해서 행방을 알 수 없는데, 어떤 미친 사람들이 사람을 저렇게 때렸는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다. 보미는 오늘도 자기 인생이 기구해서 꺼이꺼이 운다. 영철이의 가출로 정신을 놓고 찾아다니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남편마저 저렇게 되고 보니 인생이 왜 이렇게 자기에게, 우리 집에 가혹한 것인지 원통하고 원망스러워 소리 내어 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나타난 지 며칠 뒤 아들 영철이가 집에 돌아왔다. 무척 말라 있었고 눈빛이 흐리멍덩하면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당시 몸이 아파 누워만 있는 춘재나 세상 한탄을 하던 보미는 영철이가 돌아오자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1개월가량 지났을 때부터 춘재가 달라졌다. 180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분명 춘재는 연애 2년 결혼 14년 동안 폭력적인 모습을 1%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말도 별로 없고 조용히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는데, 갑자기 그랬던 그가 폭력적으로 되었다. 매일 하루에 한두 번씩 뭔가를 던지거나 상을 뒤집어엎더니 어느 순간부터 보미를 밀치고 때리기도 한다. 보미는 변한 춘재가 너무 두렵다. 처음에는 참으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참는다고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한 폭력이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인 영철을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맞으면서 왜 갑자기 춘재가 변했을까 생각해 본다. 폭력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달라졌다. 예전의 춘재는 슈퍼와 집만 알던 사람이었는데,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나타나 퇴원한 이후 하루에 5시간 이상 매일 나갔다 온다. 1년 365일 매일 폭력적인 남편, 매일 이유를 말하지 않고 최소 5시간 이상 말없이 나갔다 오는 남편과 같이 살 이유가 없었다. 영철이가 걸렸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이곳에서 다 함께 사느니, 영철이와 둘이 나와서 따로 사는 게 낫겠다. 생각만 한지 2년이다. 매일 이혼을 생각했지만, 남들의 시선, 경제적 문제, 당장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해서 참았다. 그러다 2년이 되기 전 결국 영철의 엄마인 보미는 춘재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예전 다녔던 도서관 독서토론반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영미가 보미의 현실을 알게 된 후 이혼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줬다.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병원 가거나 약 샀던 기록 등도 차곡차곡 수집했다. 약 1년간 준비를 했던 자료가 방대하여 춘재와 쉽게 이혼할 수 있었다. 자료를 내밀며 법정 소송까지 갈 것인지 그냥 합의 이혼할 것인지 보미는 조용히 물었다.
분명 춘재가 이혼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 말하지 않고 이혼 도장을 찍었다. 보미는 조건을 걸었다. 양육비 등 다른 돈은 필요 없으니 집을 달라는 조건과 아들 영철은 본인이랑 같이 살 거라는 조건이었다. 춘재는 안된다는 말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춘재의 반응에 보미는 놀랐다. 그런데 영철이가 울면서 애원했다. 아빠랑 같이 있겠다고. 보미는 영철이의 반응에 더 놀랐다. 당연히 영철이는 엄마랑 산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빠랑 같이 살 거란다. 보미는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에 목 놓아 울었다. 이혼의 두려움보다 아들을 잃은 것 같은 지금이 보미 인생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다. 이틀을 울고 나니 약간 떨어져서 생각해 봤다. 춘재는 영철이를 때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때리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슈퍼마켓 운영에서 다리 불편한 아빠 옆에 아들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선 가진 것은 집 외에 월세 내는 슈퍼마켓 외에 없었다. 형편은 좋지 않으므로 위자료를 받을 수도 없고 본인은 남의 집 가정부나 파출부, 식당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영철을 계속 돌볼 수가 없다. 슈퍼마켓 하는 춘재가 영철을 돌보기에는 본인보다 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철이에게 배신감 느껴 이틀을 울었던 보미는 현실적으로 영철이가 선택한 것 같아 동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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