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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길 위에서 만나는 아늑함

파주출판도시

파주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다. 나는 주말이면 파주로 간다. 탁 트인 자유로를 달리는 게 좋고, 서울과 달리 한적해서 좋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파주출판도시다. 책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 언제 가도 번잡하지 않고 여유로운 곳, 단정하면서도 개성 있는 건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곳이다. 건물 사이 널찍한 인도를 걷는 것도 좋고, 억새가 우거지고 물새들이 노니는 습지 주변을 걷는 것도 좋다. 그곳엔 나의 아지트 같은 카페도 있다. 주말이면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한다. 



파주까지 자유로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풍경도 좋다. 자유로의 장항IC 근처에는 왼쪽으로 장항습지가 길게 펼쳐져 있다. 푸른 솜사탕처럼 둥글둥글한 버드나무의 머리를 운전하며 흘깃흘깃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서울 근교에 이런 밀림이 있다니. 나는 주말마다 이 버드나무를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겨울엔 부스스한 갈색 파마머리로 서 있는 나무들이 봄이면 갈색에서 연두색으로, 여름이 되면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머리 색을 바꿔가며 계절을 알려준다. 



장항습지는 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에 7km 정도 길게 이어져 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위치한 습지는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어 람사르습지에도 등록됐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이 버드나무 군락지 아래에는 말똥게가 산다. 버드나무와 말똥게는 공생 관계로, 말똥게는 버드나무 아래에 구멍을 뚫어 버드나무 잎을 먹고 산다. 말똥게가 판 구멍은 버드나무 뿌리의 호흡을 도와주고 말똥게의 배설물은 버드나무의 양분이 된다. 


언젠가 취재를 위해 습지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버드나무 아래 갯벌에는 정말 말똥게가 많았다. 또 그곳엔 고라니도 살고 있었다. 군사보호지역이라 그땐 군인과 함께 들어갔지만, 지금은 탐방로와 탐조대가 조성돼 있어 사전에 신청을 하면 들어갈 수 있다. 버드나무의 파마머리를 보며 운전을 하다 보면 그때 가까이서 보았던 울창한 버드나무와 말똥게, 고라니가 떠오른다. 




파주출판도시에 있다가 해 질 무렵 자유로를 타고 돌아오는 길도 좋아한다. 한강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볼 수 있어서다. 한강 위에 떠 있는 작고 붉은 해는 도로를 따라오다가 자동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처지고 만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해는 점점 작아져 백미러로 봐야 겨우 보이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사위는 캄캄해진다. 



그 시간이 좋다. 밝은 하늘이 어두워지는 과정을 차 안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러다 완전한 어둠이 깔리면 하루를 아쉬워하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낮을 포기하고 밤을 받아들인다고 할까. 나의 하루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되돌아보는 시간. 노을을 보며 라디오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팝송을 흥얼거리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언제부턴가는 자유로의 가로등이 몇 시 몇 분에 켜지는지 맞춰 보는 재미도 생겼다. 자유로의 가로등이 6시 46분에 차례대로 켜진다는 이병률 시인의 글을 읽은 뒤부터다.  




길 전체가 '노을 맛집'인 자유로 외에도 파주에는 일몰 명소들이 많다. 파주 시내와 임진강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심학산 등 여러 곳이 떠오르지만, 파주출판도시를 애용하는 입장에서 한 군데를 소개하자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옥상이다. 파주출판도시의 랜드마크 같은 곳인 지혜의숲과 지지향 등이 있는 건물의 위층으로, 넓은 옥상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그곳에 서면 단정하면서도 저마다 멋을 드러내는 건물들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다. 옥상의 계단이나 벤치에 앉아 노을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는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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