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딸공] 못다한 엄마의 이야기
이건 오이나물이야. 나뭇잎처럼 보이지만 잎을 따보면 오이 냄새가 나거든. 이거 나물 해먹으면 엄청 맛있어! 아이고 이것 봐라, 길에 지천으로 널린 게 다 쑥이고 냉이다. 한 시간만 앉아서 캐서 내다 팔면 이거 천원은 나오겠다!
엄마는 봄이면 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워 말렸다. 평상 가득 널어놓은 도토리에서 비적비적 기어 나오는 구더기를 보고 기절할 듯이 소리를 지르다가도, 쑤어 놓은 도토리묵엔 실실 웃고 마는 나였다. 쑥 캐러 가잔 말은 못마땅해도 쑥국은 게 눈 감추듯 홀딱 먹는 나였다. 떠나온 시골의 기억이 지긋지긋하지도 않은지, 이층 양옥집에서도 온갖 자연의 부산물에 감동하는 엄마와 싫다면서 제일 잘 먹는 나.
제사 음식은 간 보는 거 아니다. 제사상은 정성인거야! 아이고!! 누가 제사 음식을 쟁반도 안 받치고 접시 째로 덜렁 들고 가니?
아빠도 엄마만큼 막내였다. 그러니까 엄마는 맏며느리가 아니었고, 우리 집에 제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대여섯 번 제삿날마다 전과 산적을 광주리째 해서 차에 싣고 큰집으로 내려가는 엄마였다. 여자라서 차별받는 게 그리 싫었다면서 매번 절도 못하는 남의 집 제사상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는 엄마.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냐고 투덜대면, 다 자식 잘되라고 하는 거랬다. 아니, 자식 잘 되라고 왜 남의 집 조상님한테 정성을 들이냐고! 너는 모른다 했다. 제사는 정성이랬다.
냉장고 오른쪽엔 김치다. 한 번 먹을 만큼씩 덜어 먹고 꼭 눌러놔야 한다. 반찬 없거든 냉동실에 얼려놓은 국 한 팩씩 꺼내 먹고, 도시락은 김이랑 소시지 번갈아 넣어서 가져가라. 잘 할 수 있지?
당뇨라는 병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하루아침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나와 오빠가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더디면서도 빠르게, 당뇨는 우리 가족의 삶을 잠식했다. 현미밥만 먹으면 평생 지금처럼 지낼 것 같던 엄마가 입원하는 주기가 짧아졌고, 입원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엄마가 한 번씩 집을 비울 때 마다 사촌언니, 고모, 이모들이 그 자리를 채우다가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 아들 딸 똑같이 키우고 싶었다면서 주인 없는 냉장고의 안부를 나에게 부탁하는 엄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안부를 이어받는 나.
가을에 주워 온 도토리가 묵이 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주인 없는 쑥이 하릴없이 냉동실에서 얼어가는 시간이 자꾸만 길어졌다. 나는 꽤 자주, 착한 딸이 되고 싶었고 또 자주, 나쁜 년이 되고 싶었다.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다. 회사는 아빠에게 더 이상 지입차량을 쓰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부지런하면 족하던 시절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