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L매장에서 생긴일 -2부-

작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면...?

by Claire Kim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명품 매장에서 생긴 일 2부>



그 비밀의 방은, 처음 L사 매장 입구를 못찾아 헤매면서 누가 말걸까 무서워 미어캣 놀이했던 그곳이 맞았다.


나는 평소에, '부의 이동'에 관심이 많다. 내가 1년에 몇 천만원 이상 물건을 사고 백화점 VIP 타이틀을 달 일은 없지만 '부자'라고 하는 고소득자들이 그들의 자원을 어디에 쏟고, 그 '쩐'이 몰려드는 곳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시공간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늘 궁금해했다. '남'에게 인정받고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전 세계에서 지독하리만큼 가장 열렬한 한국 사람들의 적나라한 욕구가 펼쳐지는 곳, 그곳이 백화점 VIP들이 드나드는 그들만의 방이 아니겠는가?


비행기를 타면,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클래스를 지나 이코노미로 가게 되는데 내가 보기에 항공사의 마케팅은 '설국열차'의 꼬리칸으로 가는 여정을 차용한 듯 하다. 여행 가는 건 너무나 좋아하지만, 좁디 좁은 비행기 좌석에 구겨져 몇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이 무서워 장거리 여행이 꺼려지는 나이가 되자, 나에겐 그 '꼬리칸'의 씁쓸함이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더 진해졌다.


몇 천만원을 내고 퍼스트 클래스를 탈 순 없지만, 언젠가 로또라도 당첨이 되면 꼭 한번 '대접'받아보고 싶은 공간이 퍼스트 클래스인데, 오늘 얼떨결에 발을 들인 그곳이, 나에겐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같은 곳이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평생 올 일 없을 곳에, 하필 한적한 평일 오후 '백화점 VIP' 체험 쿠폰에 당첨 된 양, 안내 받은 장소에 앉아 담당 매니저가 상품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나마 일할 때 어울리는 가방 들어볼거라고 자켓 셋업을 입고 온게 다행인가 싶고, 집에서 나오기 직전 급히 두들긴 화장이 들뜨진 않았나 신경이 쓰이고,,,어제 머리 염색을 새로 한 것이 신의 한수 였다는 둥, '수요 없는' 합리화를 하느라 머릿 속이 바빴다.


마음으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나의 애티튜드는 마치 이런 곳에 많이 와본 양 익숙한 '척'을 해야 한다는 요상한 부담감에 자켓 안 속옷에 개미가 돌아다니는 것을 참고 있는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눈만 끔벅이고 있는 나에게 다른 남자 매니저분이 오셔서 "기다리시는 동안 탄산수 드릴까요, 물 드릴까요?" 하고 친절한 톤으로 물어보셨다. 탄산수를 마시면 첫 입에 꼭 딸꾹질을 하는 비싼 제품에 물을 뿜을까 싶어, 다급하게 '물이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안쪽 비밀스런 방에서 '에비앙'이 금박 접시에 담겨 나왔다. 나는 물을 갖다주신 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에비앙을 소중하게 쥐고서 급히 한모금 마셨다.


아... '에비앙'이 이렇게 맛있는 물이었던가...


아니, 정확히는 에비앙의 물맛보다 물병의 온도가 어찌나 적절한지, 너무 차갑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그 적당한 온도가 타는 속을 '안 타는 척' 해야 하는 나에겐 꿀맛이었다. L브랜드 고객 서비스 담당자는 에비앙 물온도 유지하는 것도 교육을 받는 것인가 싶게, 그 뒤로도 에비앙을 소중히 쥐고 눈이 핑핑 도는 주얼리 제품이 나올 때 마다 생명수처럼 마셨다.


나의 친절한 Customer Adviser, 그녀는 L사의 하이엔드 주얼리 매장이 원래도 희소한데, 한국 매장에만 들어온 '사파이어' 반지가 있다며 11캐럿 짜리 사파이어 반지와 다른 몇 가지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에비앙을 갖다주신 남자 매니저가 둘러보라며 아이패드에 다른 제품들을 보여줬는데 '살 생각도', '살 수도' 없는 나에게 사진 속 반지와 목걸이 밑에 붙은 가격은 제일 싼 것이 5백만원대였다. 대충 비싸겠거니 생각을 하곤 있었으나, 그녀가 들고 나타난 11캐럿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반지는... "가격은, 들으시면 좀 놀라실 거에요." 라고 매니저가 예고를 했으나, 4억 9천 5백만원이란 금액을 듣고 확장된 내 동공과, 커진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15년 전, 결혼 할 때 남편과 나는 백금반지를 하나씩 나눠 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다이아몬드를 직접 볼 일도 없었다. 머리털 나고 44년 만에 처음 대면한 다이아몬드와 짙은 코발트 블루의 사파이어 반지는 매니저가 언제 끼워 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새 내 넷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매니저는 내가 원래 끼고 있었던 반지가 사파이어 보다는 옅은 색이라 아쿠아 머린인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푸른색 원석은 다 사파이어인가 싶었던 나는, '스리랑카'산 이라 좀 더 비싸다는 사파이어의 짙은 푸른 색을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사파이어를 떠 받치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내는 반사하는 빛에 시야가 잠시 뿌옇게 되자 정신이 들었다.


혹시나, '반지 껴본 값을 내라'고 하진 않겠지만 이 비밀스런 방에 오래 있다가는 정신줄을 아예 놓을까 싶어 나는 호다닥 사파이어 반지를 빼서 조심스럽게 반지대에 꽂아놨다. 매니저분은 다른 반지를 설명하는 와중에도 연신 끼고 있던 장갑으로 습관처럼 사파이어 윗부분을 닦으셨다. 그리고, 내가 레이어드로 끼고 있던 다른 반지도 유심히 봤는지, 그와 비슷한 반지들을 찾아서는 오른 쪽 손에 계속 끼워주셨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 반지 어떤 걸 갖고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정말로 고가의 반지가 없는 나는 "아,,, 반지를 잘 사지 않아서, 다른 브랜드 반지는 없네요."라고 그 분을 만난 이래 가장 정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냥 반클리프나 에르메스나 하다못해 샤넬이라고 아무거나 말할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슬며시 들자, 피노키오처럼 코가 자꾸 길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너무나 친절한 매니저님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나에게 새로운 반지를 자꾸 껴줬는데, 어찌해얄 바를 모르는 내 속도 모르고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 매니저(에비앙 갖다주신 분)분이 이런 것도 껴보시라며 또 새로운 반지 셀렉션을 들고 나타나셨다.


"어......어... 와.......와우...진짜.....너무 예쁘네요"만 연발하는 사이


정신을 차려보니, 내 열 손가락에 얼추 10억 어치 보석과 다이아몬드가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다.


내가 다른 반지를 잘 안산다고 말한 순간, 아니 아마도 훨씬 전부터 나의 친절한 매니저님은 이미 나의 구매력을 파악하고 '사지 못할 것' 같은 반지와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내가 절 대 살 수 없는 가격의) 반지를 적절히 섞어서 보여줬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리액션을 최대한 자제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친절한 매니저님은 이젠 나에게 아예 물건을 팔려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L브랜드의 하이엔드 주얼리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시간을 쓰는게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L브랜드에서 원석을 사면 커스트마이징 해서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을 해주는데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재밌는 사실'은 원석을 사면 제작하면서 추가로 들어가는 다이아몬드 가격은 안받는다는 것이다. 원석 가격이 몇 억대이니 그 안에 다이아몬드 가격이 포함됐단 얘긴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가격을 알고 있는 나로써는 그녀가 원하는 '깜짝'놀라는 리액션을 하기가 어려웠다. L사의 이 비싸고 '재밌는 사실'이 실제로 '유용한' 정보가 될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는 나로써는, 그저 '아, 그렇군요...제작하면 반지에 빈틈 하나 없이 빼곡히 다이아아몬드로 다 채워야겠네요!'가 최선의 리액션이었다.


원석 제작 얘기가 끝나고 '비밀의 방' 방문 목적도 거의 달성 될 때 즈음 그녀가 드디어 공포의 그 질문을 했다.


"고객님, 오늘 보신 것들 중에 아까 가방 포함해서, 오늘 반지 중에 어떤 게 마음에 드셨을까요?

, 제가 견적서 핸드폰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아, 그리고 오늘 보신 상품은 언제 쯤 구매 예정이신지..저희가 재고가 많지 않아서 주문하시면 1주일 정도 걸리거든요. 결재하러 오실 때 미리 전화주시면 상품 준비해놓겠습니다."


"아, 네네 ... 사실, 가방은 진짜 너무너무 맘에 드는데, (진심으로 가방은 넘 예뻤다. 가격은 안예쁘지만)

남편이랑 상의를 해봐야해서 제가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오옹." 라고 말하며 나는, 그녀가 나에게 쏟은 시간과 호의, 그리고 '에비앙' 값으로 내 휴대폰 정보를 넘기는 건 당연하다는 듯이 내 번호를 술술 일러주었다.


하필이면 나 말고 고객 한 명도 없던 수요일 오후, 명품 L브랜드의 매장에서 한여름 낮의 꿈을 꾸었나 싶었다.


두 매니저에게 드디어 마지막(이길 바라며) 인사를 하고 매장을 나설 때 손에 들린 에비앙만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남은 에비앙을 목젖에다 털어넣으며, 어머님이 주신 반지를 다시 봤다. 몇 달 전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시외할머니)께서 미국에서 사다 주셨다는 신비한 푸른 빛의 반지.

이 반지가 사파이어가 아닌, 내 탄생석인 아쿠아 머린이란 걸 알게 돼서 더 특별해졌다. 그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얼마전에 주신 그 반지 너무 잘 끼고 다니는데, 오늘 그 반지 덕분에 너무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한 두 달 전, 30년도 더 된 반지를 새 것처럼 갖고 계시다가 당신에겐 안어울리신다며 나에게 선뜻 내어주시고는, 어쩜 그렇게 맞춘 것 처럼 잘 맞냐고 너무 너무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반지가 제 주인을 찾았다며 좋아하셨다.


나는 '남편이 미워지려고 할 때 마다, 반지 끼고 어머니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농을 치면서, '새 신발 사면 좋은 곳에 데려다 준다고 하듯이 어머님이 주신 반지가 저를 아주 특별하고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결혼하고 15년 째, 늘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받을 복을 시부모님 만나면서 다 썼나 싶을 정도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괜시리 마음이 뜨끈하게 부풀어(?) 오른 나는 아껴뒀던 소고기 살치살을 꺼냈다. 남편과 아이들이 저녁 식탁 자리에 앉자 전기 후라이팬도 꺼내서, 목살과 살치살을 굽고, 앞 접시에 고기를 사이좋게 한 점씩 놔주며 오늘 있었던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내가 뭐에 홀린듯이 'L브랜드의 VIP주얼리 룸에 들어가게 됐다'고 까지 말하자, 직전까지 살치살을 맛있게 씹던 남편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혹시나, 내 얘기가 '구매 엔딩'이었을까봐 그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가 스쳐 지나간 게 분명해보였다. 소문난 짠돌이인 남편이 고기 먹다 체할까봐 "나를 뭘로 보고..."라고 안심 시켜줬다.


나의 남편은, 본인에게 쓰는 돈은 지독하리만큼 아끼는 사람이다. (가족들이나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에는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둘째가 아빠에게 '하츄핑' 스타일로 지어준 별명은 '구두쇠핑'이다. 원래는 '알뜰핑'이라고 불렀으나, 그동안 아빠가 안사준 물건들 때문에 성에 안찼(?)는지, 곧 "아빠는 '구두쇠핑', 엄마는 '쇼핑' "이라고 선언했다.


'구두쇠핑'인 나의 남편은, '해프닝'으로 끝난 나의 무용담을 다 듣고, 진심으로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싱크대에 설겆이 거리를 갖다 놓는 나에게 "오늘 이 손가락에 비싼 반지들 끼느라 고생했네" 라고 말하면서 남편이 돌아 섰는데 그가 입은 티셔츠 목덜미에 구멍이... 주먹하나는 들어갈만큼 '커져' 있었다.


한 번 옷을 사면 찢어질 때까지 입는 나의 남편. 그동안 작은 구멍이 보일 때 마다 제발 버리라고, 새 옷을 사줬지만 원래 입던 옷의 익숙함을 못 버리는 남편은, 예쁘고 좋은 물건들 사이에서 도파민 분출하는 마누라가 외계인 같았을 것이다.


나는, 작은 여러개의 구멍들이 버티다 못해 하나로 완전히 찢어져 버린 그의 셔츠 구멍에 손을 넣어보며 깔깔깔 웃었다.


오늘 내가 잠시 탐했던, 손가락에 스쳐 지나간 10억원 어치의 '작고 반짝이는 것들'의 허망함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최고급 가죽을 쓴다는, L브랜드의 530만원 짜리 가방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의 현실은, 칫솔도 칫솔모가 '송충이'가 될 때까지 쓰는 남편의 칫솔을 몰래 바꿔주는 것인데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은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집 한채 값의 희귀 보석을 손가락에 얹고 다니다가 최면에 걸릴듯한 그 황홀한 빛에 결국 눈이 멀게 되는 시덥잖은 상상을 해보았다.


라떼 아트가 잘 구현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잔뜩 행복해진 마음으로 사랑하는 시어머니가 주신 특별한 반지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 반지가 진심 마법을 부리는게 아닌가 싶다.


진짜로 '예쁘고 좋은 것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갈 반지.

어머님이 주신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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