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하여
10년이란 시간 동안 수백 건의 행사를 기획, 운영, 진행, MC, 통역하는 일에 참여하고 맡아왔지만 나에게 행사라는 것은 '휘발성이 강한 강렬한 에너지'의 응축과 같다. 각각의 행사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에너지와 그 모든 자원들이 쫀쫀하게 짜인 시놉시스와 큐시트, 리허설 이름 없는 스태프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종합예술과 같은 추진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D-DAY의 온갖 돌발상황과 변수가 버무려져서 행사장 당일의 긴장과 분위기, 모인 사람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에너지가 더해져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된다.
그래서 단 하나의 행사도 같은 패턴이거나, 뻔한 결말일 수가 없다. 모든 변수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MC podium에 올랐다고 생각하지만 수 백건의 행사 중 단 한 건도 '딱 예상한 수준'으로 끝난 적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 하게 될 미래 행사들의 결말도 그리 다를 것 같지 않다. 사실 그 '변수', 통제되지 않는 미꾸라지처럼 10년 차 깜냥도 빠져나가는 행사의 '돌발상황'이 진행자의 능력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경험이 많은 진행자는 한국어로 하든, 영어로 하든 어려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받아치고 무대 경험이 많지 않은 초짜들은 멘붕이 와서 얼어버리게 되는 둘 중 하나인 셈이다. 솔직히 그 잣대를 나에게 댄다면 나는 어느 정도가 될지 스스로 판단하기 참 어렵지만, 어느 한 분야를 10년을 팠다면 중간 이상은 하지 않을까 하는 후한 점수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도 아쉬움이 남지 않은 행사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행사'를 꿈꾸는 내 기준에 따르면 앞으로도 아주 딱 잘라서 '국제행사 진행하는 MC입니다'라고 내 소개를 할 기회가 주어 질 것 같진 않다.
행사가 시작되면, 조명이 켜지고, 행사 담당자의 신호가 떨어지고, '개회 선언'을 힘차게 한다.
그 순간부터 대기상태였던 나는 '진행자'가 되고 나에겐 오롯이 '라이브'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리허설과 '사전 협의'는 없다.
무대에 오른 발표자와 식순에 따라 행사의 기운이 갈팡질팡한다. 분위기가 늘어지거나 처지려고 할 때 적절하게 치고 들어가서 뒤로 밀리는 시간을 앞으로 계속 잡아당긴다. 긴장된 에너지가 몇 시간 내내 응축돼서 힐을 신고 서있는 발가락 끝까지 채운다. 금방이라도 털썩 주저앉을 것 같은 무릎을 달래며 버텨본다.
행사가 익어갈수록, 행사에 참여한 군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더해져서 오묘한 색깔을 만든다. 데칼코마니 물감 놀이의 마블링처럼 각자의 에너지가 더해져서 웃음을 주기도 울음을 주기도, 전혀 생각지 못한 성토를 내뱉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규정할 수 없는 꿈틀대는 행사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중독된 듯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보수적인 조직에서도 '빨간색'밑줄 보고서를 써서 내던 나의 시뻘건 반역 기질과 행사의 '길들여지지 않는' 변수가 나의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