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광고제 한영통역,뒷 이야기(2)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Claire Kim

(1)편을 먼저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서!


3. No risks, No gains


드디어 부산 벡스코(BEXCO)행사장에 도착했다. 하필 행사 당일 부산엔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험악한 날씨가 날 반겨주었다. KTX로 이동하는 동안 집에서 갖고 온 커다란 탁상 거울을 당당하게 좌석 앞에 앉히고 부산에 도착할때까지 공들인 '무대 메이크업'이 번질라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잔뜩 뽑은 자료집(사실 현장에서 자료를 찾아볼 여유나 시간이 없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서랄까...)을 백팩에 둘러매고 담당자를 찾아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 4시, 장내 정리를 알리는 안내멘트를 하는 동안 2부의 기자회견전, 대본대로 1부를 매끄럽게 정리해놓고 2부의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던 나는 1부에서부터 벌어질 '통역'폭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직위원장과 운영 위원 고문의 인삿말, 개회사등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작년까지는 내부 직원이 사회를 봤던 행사장에 '전문' MC가 와서 무언가 굉장히 '공식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뉘앙스로 행사 시작을 알리자 요즘 말로 위원장님이 '텐션'이 오르셨는지 갑자기 대본에 있던 인삿말과 다른 얘기들을 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를 믿는다는 눈빛으로 "통역은 다 알아서 하시지요?"잠깐 운을 떼시곤 성공적인 행사 개최에 들뜬 심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섞은 개회사를 하셨다. 나는 행사 시작 5분 만에 그동안 머릿 속에 잘 '쑤셔 넣었다'라고 믿었던 관련 용어를 찾아서 영어로 바꾸는 그 '전환'과정과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 돌발 상황 사이에서 정신줄을 잡느라 당황했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러 용을 썼다. 그 뒤, 운영위원장님의 소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래 행사는 '돌발상황'이 있어야 진짜 '행사'라고 평소에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순서도 진행해야하고, 지금 순서와 상관없이 마이크를 잡으시는 분들의 말도 통역해야하는 그 상황에서는 최근 6년간 진행했던 행사의 긴장과 집중력을 다 녹여서 써야 할 판국이었다.


그리고 2부, 드디어 지난 한달 반 동안 걱정이 태산이었던 기자 회견시간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는 심사위원들이 '덜 말하시길' 바랬던 나의 소망은 산산히 부서진채, 기자들이 대기 하고 있던 floor에서도 그리고 답변하는 데스크에서도 예상과 전혀 다른 질문과 답변이 오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작년에 있었다는 '토론'과 '회의'가 난무하는 그 카오스같은 상황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현장의 기자가 심사위원을 꼭 찍어서 질문을 하는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면 그 자리에서 답변할 의향이 있는 심사위원이 먼저 마이크를 켜고(9명의 심사위원에겐 9개의 회의 마이크가 주어짐) 그 뒤 또 다른 의견이 있던 분들은 의견을 보태고 그 자리에서 왜 '그 작품'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누구의 말을 자르고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을 한국어로 전달해야할지 진땀이 났다. 분명히 기자 회견 시작 전에, 심사위원들에게 내가 통역을 할 수 있는 텀을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긴 했는데,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그분들의 머릿속에 나의 부탁은 이미 안드로메다행이었다.


너무 여러가지 얘기들이 오고 갔기에, 필사적으로 필기를 하긴 했는데 원칙대로 화자의 모든 말을 전달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 멘트를 읽으며 머릿속에는 놓친 정보와 데이터를 복기하는 이중적인 상황에서 고문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제한 된 시간'이라는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 되고 나는 공식행사 이후 심사위원장의 단독인터뷰를 통역하는 곳으로 이동해야했다. 이동하는 동안, 나에게 일을 맡겨주신, 언론 홍보를 대행해서 맡은 회사의 대표님께서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행사 격을 살려주는 MC 진행에 '결코 쉽지 않았을' 통역까지 너무 잘해줘서 주최측에서도 무척 좋아하셨다고 전해주셨다. 정말 다리가 풀려서 어딘가에 퍼져 앉고 싶었지만 아직 통역이 남아 있고, 클라이언트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니 다시 힘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완벽하게' 클리어 하지 못한 통역 부분이 밥에 들어 있는 돌을 계속 씹는 기분처럼 남아 있었다.


국내 언론사의 기자분과 Mr. Ari Halper (아래 사진속)라는 FCB Newyork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 에이전시의 대표)와의 단독 기자회견 시간이 주어졌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전달해야하는 앞의 행사보다 작은 회의실에서 한 사람의 의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터뷰이로 참석하신 이 Mr. Ari 디렉터란 분의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 그리고 광고를 향한 열정과 철학, 소신등이 다시금 힘을 내서 통역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2018 AD STARS (부산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장이었던 Mr. Ari Halper, 뉴욕 FCB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광고 에이전시의 대표이시기도 함. 유쾌한 지성!



어린 소녀와 환경을 주제로한 광고를 소개할 때 딸을 가진 아빠로써 눈물을 보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도 질문이 '내 인생을 바꾼 광고'였을 텐데, 그 광고 이전에 자신의 딸, 여성을 보던 시각이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었단 사실이 자신을 매우 충격에 빠트렸다며 광고란 매체가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모바일에서 괴롭히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즐거운 그리고 의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단 자신의 철학을 얘기해주었다.


Ari Halper의 성의 있는 답변과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기자에게도 질문거리를 더 자아내서 인터뷰가 예정보다 더 길게 이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통역이란 일을 떠나서 한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가의 인간적인 매력을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까이에서 제일 먼저 들을 수 있단 사실 자체가 나를 흥분 되게 했다. 내가 한 통역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된 기사는 어떤 말의 향연이 될까란 기대와 한국어와 영어의 뉘앙스 차이를 더 정확히 표현하는 '번역'감각을 최대한 구동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껴졌다.

(이 때 했던 인터뷰 기사: http://biz.newdaily.co.kr/site/data/html/2018/09/07/2018090700046.html)

모든 공식 행사가 다 끝나고, 짐을 싸들고 부산역으로 향할때 쯤, Mr. Ari halper와 인사를 하면서 미식가이기도 한 그가 부산에서 시도할 법 한 한국 음식들에 대한 얘기들을 덧붙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게 저녁6시경이었다. 거의 두 달에 걸친 나의 역대급 애증의 MC/통역 컴비네이션 프로젝트가 그렇게 끝이 났다.


4. 끝나지 않은 이야기

보통 행사를 치르고 나면 여운이 며칠 가지 않는다. 좋은점이 될 수도 있고 나쁜점이 될 수도 있지만 십년이란 시간이 흐르는동안 행사때 유지했던 흥분,긴장이 가시고 일상의 루틴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부산국제광고제는 행사 특성상 밀도가 다른 일이기도 했고, 글로벌 커뮤니케이터를 지향하는 나의 모든 역량을 한번에 테스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잘한것 아쉬운것들이 엉켜서 거의 보름을 이불킥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뒤로도 전담 통역을 했던 Mr.Ari Halper Creative Director 와 Linked In에서 1촌을 맺고 그의 근황을 간간히 보면서 급변하는 광고시장에 대한 관심을 끄지않았다.


그런데 최근, 그가 이끌고 있는 팀이 제출한 버거킹 광고가 2019 칸느 국제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개인적으로도 그에게서 어떤일이든 성공할 것 같은 특별한 Vibe를, 에너지를 느꼈었는데 그걸 대내외로 인정받는 순간을 알게돼서 내일처럼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Ari Halper의 기운이 내게 전해진걸까..


작년 부산국제광고제 언론홍보를 대행했던 에이전시의 같은 담당자에게서 연락이왔다.

2019년 올해도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맡아줄 수 있냐고..


2019년 8월 22일 부산벡스코.

12회 부산국제광고제.


익숙한 무게감의 납덩이가 가슴에 얹어졌다.

그리고 기대감.


It is show time,again.



*통역사: 보통 회의장에서 동시통역을 하시는 통역사분들은 한국외대나 이화여대등과 같은 대학의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통역 전문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현장에서 프로페셔널한 통역을 완수해내는 분들입니다. 저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전문 통역사는 아닙니다. 그래서 동시통역을 할 수있는 역량은 없고 다만 대기업, 국제기구등에서 쌓은 비즈니스 섹터 실무경험과 방송, 영어등을 접목해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 통역사는 아니지만 매번 통역일을 할때마다 묵묵히 이 지난한 시간을 쌓아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통역사분들이 진심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번역도 마찬가지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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