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에,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영국의 한 방송국에서 영국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에 맞는 의상을 추천해 주는 *‘메이크 오버’ 리얼리티 TV쇼를 보게 되었다. 평소 가족, 지인들에게 ‘패션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사연자들을 만나서 패션 스타일리스트인 진행자들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일반 출연자들의 현재 몸매 타입을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국 여성들의 표준몸매유형을 조사하고 분류해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줬는데, 오죽하면 그 당시 영국 여성들은 ‘서양 배’ 모양의 몸이 가장 많다는 것까지 기억이 난다. 서양 배는 우리나라로 치면 표주박처럼 생겼는데, 한마디로 아래 뱃살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예시로 든 ‘영국 여성 표준 몸매’의 이미지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나는 충격에 가까운 신선함을 느꼈다. 이 TV쇼에 출연한 영국인 ‘아줌마’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현재 몸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나 피드백을 받지 않고, 영국 여성 ‘표준’ 몸매 유형에 따라 분석해서 나름 ‘과학적’으로 살찐 부분은 감추고, 자신의 몸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메이크오버에 성공했다.
솔직히, 나는 그때에도 출연자들이 사연자들의 몸에 대해 가슴이 돋보여서 예쁘다는 등, 종아리를 강조하면 훨씬 시크해 보인다는 등의 피드백을 보면서 속으로 ‘저건 다 방송용으로 하는 거짓말이다’ 싶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수 십 년간 ‘메이크 오버쇼’는 ‘렛미인’ 같은 쇼처럼 성형과 혹독한 다이어트로 다 ‘갈아엎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박혀있었다. 현재의 내 모습은 언제나 ‘살을 더 빼야’하는, ‘문제로 가득한’ 상태에서 시작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자신의 몸을 긍정하자는 ‘Body Positive’ 같은 캠페인도 나오면서, 건강한 몸에 대한 인식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시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외모 지상주의, 소위 얼평(얼굴평가), 몸 펴(몸매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부산의 자갈치 시장 같은 곳에 가서 장보고 있는 40대 50대, 60대 여성, 할머니들에게 지금 입고 있는 스타일 말고 단점을 감추고 장점은 부각해주는 스타일로 메이크오버를 해주는 TV프로그램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금도 불가능해 보인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에 대한 필요는 무대에 서거나, 늘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고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미적분의 초월함수’ 같은 존재다. 뼛속까지 문과여서 수 2 책만 봐도 경기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학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꺽꺽대면서 억지로 시도하다 수능을 말아먹게 되는 결말 말이다. 필요는 한데, 원한다고,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닌 성격의 것 말이다. 그래서, 행사장에서 늘 ‘매력적인’ (절대로 살찐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사진이 찍혀야 하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일이 끝난 후 행사장에서 남이 찍어주는 사진을 보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 돼버렸다.
결혼하고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몸이었을 때, 코엑스에서 ‘주얼리 쇼’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 홍보대사로 참석하는 연예인이 지금도 동안과 넘사벽 관리 잘된 몸매로 유명한 ‘김사랑’씨였다. 김사랑을 이겨 보겠단 생각은 억만 분의 일만큼도 없었지만 옆에 서면 조금이라도 덜 ‘오징어’처럼 보이려고, 44 사이즈의 화려한 드레스를 사놓고 혹독한 절식과 운동으로 옷에 몸을 맞췄다. 그때 베일 것 같은 턱선이 나온 옆모습은 지금도 내 블로그에 대문 사진으로 걸려있지만 볼 때마다 양심에 찔린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고 바다코끼리처럼 몸이 부었을 때도 그 사진을 보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쉬어야 할 때마다 당장 내일, 일주일 뒤의 일을 알 수 없는 프리랜서의 불안정함보다 탄력이라고는 없는 늙은 호박 같은 배와 딱 제일 보기 싫은 부위만 야무지게 살이 불은 상체를 보면서 나의 자존감은 지구 맨홀까지 내려갈 기세였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둘째는 이유식을 할 때쯤 독하게 마음먹고 레몬 디톡스니, 현미 다이어트니 시도해 봤지만 빼앗긴 탄수화물만큼 애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내 몸에 대한 불만과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고 여전히 행사를 뛰고 있는 동기와 후배들을 보면서 더 심해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일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이, 내 외모가 ‘행사에 나갈’만 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나는 다이어트 대신 나의 비교대상자인 지인들의 인스타를 언팔로우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이 들어올 때마다 ‘일’을 지키기 위해 시부모님과 남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은 덕에 프리랜서 14년 차를 어찌 저지 해나가고 있지만 ‘외모와의 전쟁’은 사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40대가 된 지금은 30대 때 지향했던 것보다는 훨씬 ‘후덕한’ 외모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딸내미들이 내 뱃살 위에 누워서 말랑 야들한 내 팔뚝 살을 조물조물하면서 ‘엄마는 자연산 말랑이’(스퀴즈)라고 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너희가 자꾸 엄마 살 가지고 놀리면 (마른) 아빠처럼 뾰족하고 딱딱해질 거’라고 엄포를 놓지만 평생 살이 안 쪄서 고민인 남편처럼 될 일이 이번 생에 없을 거란 걸 나도 안다. 500그램을 빼기 위해 얼마큼 스트레스를 받고 운동으로 땀을 흘려야 하는지 생각하면 그냥 ‘자연산 말랑이’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제 옷에 몸을 맞추려는 노력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외모뿐만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굳이 안 되는 걸 억지로 억지로 끼워 맞추다 결국 마지막엔 더 안 좋은 결말을 가져온다는 걸 나이 들면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약 없이 식단과 운동으로 살을 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보려다 심각한 변비가 생기는 바람에 두 달간 피를 보다 결국 수술을 했다. 십 년 전처럼 안 먹으면 살이 저절로 빠지고 옷에 몸이 숭덩숭덩 들어가는 일은 이제 생기지 않는다는 걸 여러 차례 피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평생을 늘 내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불만스럽게 살던 내가 나이 들면서 새롭게 곱씹는 단어가 있다.
Appreciation.
Appreciate란 말을 제일 많이 쓰는 경우는, “I appreciate that.” (감사하게 생각해요, 고맙게 생각해요.) 일 것이다. 보통 ‘감사’란 뜻에 쓰이지만 ‘진가를 알아보다’, ‘깊이 인정하다’란 뜻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십여 년 전에 본 그 영국 리얼리티 쇼에서 지향하는 바가 바로 Appreciation이었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몸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 외모라는 것이, 남에게 보이기 전에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조차 낯설어져 버린, 뒤바뀐 기준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쇼에서 패션 전문가들이 중년의 영국 여성들에게 하는 칭찬이 거짓말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본인이 자신이 아름답다고 인정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거짓말이니 뭐니 해댔는지, 참으로 오만한 시선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진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눈이 생기자 세상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돌쟁이 아기들이 아장아장 걷는 모습, 3월에 이르게 올라온 나뭇가지의 연한 새순들, 둘째 딸이 웃을 때마다 매번 정직하게 패이는 입가의 작은 보조개. 누가 봐도 아름답고 고운 것들 외에도, 처음 보는 상대의 얼굴과 제스처를 유심히 보고 이 사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어디에 숨어 있나 찾아보게 된다. 나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잦아진다. 늘 정갈하고 담백한 음식을 차려주시는 시어머니의 길고 마른 손등 위에 솟아 오른 핏줄처럼 말이다.
‘진가’를 느끼고 인정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대상을 찬찬히 살펴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 눈을 감고 킁킁 대 보기도 하고, 오른쪽에서 보는 것이 더 예쁜가, 왼쪽에서 보는 것이 더 똑똑해 보이는가 요리조리 다른 각도에서 보고. 그러다 진심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향유’하는 순간이 온다. 낯선 이에게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의 향기를 맡았을 때처럼 훅! 하고 깨달아진다. 아!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아이들과 사우나를 가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강제로 보게 되는 상황이 싫어서 가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이제는, 거울을 보면서 한숨 쉬지 않고, 요리조리 보면서 ‘향유’할 용기가 생겼을까?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은 들겠지만, 주어진 것에 감사할 마음이 조금씩 생겨난다.
I appreciate my body.
(*찾아보니, 이 TV쇼는 ‘What Not To Wear’이란 제목-외모평가는 배제하고 철저히 옷 스타일링만을 목표로 했단 걸 알 수 있음-으로 Body Positive란 말이 나오기도 한참 전인 2001년에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