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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쁘띠 아만다>,
상실의 고통을 극복해나가는 여정


삶은 내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 삶은 계획하고 조절할 수 있다 치더라도 타인과 얽힌 것들은 손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쁘띠 아만다>는 상실과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상실의 조건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죽음이 있다.


죽음은 회복되지 않는다.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여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살아갈 이들은 상실을 극복해야 한다.


민박집을 관리하는 스물 네 살의 청년 '다비드'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누나 '상드린'을 잃는다. 상드린에게는 일곱 살 딸 '아만다'가 있었다. 다비드는 어떻게든 아만다를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제 생활조차 불안정하던 20대 청년이 졸지에 가장의 자리에 앉게된 것이다.



다비드와 아만다는 상드린의 죽음 이전에도 상실 속에서 살아가던 인물들이다. 아버지 손에서 키워졌던 다비드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고, 아만다 역시 아버지 없이 자라왔다. 가족의 부재를 느껴오던 두 사람이 또 한 번 상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삼촌과 조카는 슬픔을 억누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믿고 의지해야 할 관계가 둘 뿐인 이들은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다짐해나간다.



<쁘띠 아만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색채는 따스하다. 이는 슬픔이 극복 가능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지라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이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영화를 압축하는 마지막 시퀀스. '앨비스는 건물을 떠났다'라며 흐느끼는  아만다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비드는 '봤지? 아직 안 끝났잖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거야'라며 아만다를 위로한다. 앞으로의 다비드와 아만다의 시간은 고통이 아닌 희망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아만다의 울음이 웃음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의 집합체이다. 늘상 행복할 수 없듯, 슬픔과 고통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현재 우울하고 아픈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면  <쁘띠 아만다>의 주인공들로부터 희망의 에너지를 전달받기를 권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 어떤 상황보다 고통스러운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변화무쌍한 하늘을 보라.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지만 또 다시 화창한모습을 드러낸다. 평화로웠던 공원에 테러가 일어났듯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 당장 지금의 슬픔에만 함몰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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