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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로맨스 영화 <러스트 앤 본>

절망을 희망으로 탈바꿈시킨 힘 '사랑'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밖을 나서지 않아도 광합성을 잔뜩 받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억수가 쏟아져 어두컴컴한 날에도, 시린 바람과 무거운 눈덩이가 쏟아지는 겨울날에도 이 영화를 보면 한없이 눈부시다.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선글라스를 써야 할 정도다. 실제로 영화 속 여주인공 스테파니는, 오랜만의 외출 때 선글라스를 거부하지 못한다. 밝음. 희망. 영화 <러스트 앤 본>이 궁극적으로 감상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앞선 단어들과 정반대의 것들로 채워진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무릎 아래의 두 다리를 잃게 된 고래조련사 스테파니와 아들을 구하려다 손의 뼈를 잃은 남자 알리. 영화는 이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이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열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클럽에서 안면을 튼 두 남녀는, 스테파니의 사고 이후 알리가 그녀의 두 다리가 되어주면서 점진적으로 친분을 쌓아나간다. 알리는 당장의 생계가 걱정인 남자다. 다섯 살 짜리 아들을 홀로 키워야하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는 그는 돈 때문에 불법 도박 격투시합에 참가한다. 그를 지켜보는 스테파니는 불안하기만 하다. 친분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쌓아가는 두 남녀는,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준다.



사고와 고통, 절망과 슬픔. 스테파니와 알리에게 닥친 상황들과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이 암흑의 상황에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 절단된 육체를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태양 만큼 강렬하다. 장애를 극복할 만큼의 힘.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과 이별했을 때는 죽을 만큼 괴로워하기도 한다.


영화 <러스트 앤 본>의 매력은 '간극'에 있다.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 암흑과 빛 등의 대비되는 요소들을 극명하게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킨다. 특히 감독은, '빛'에 초점을 맞춘다. 두 다리가 절단된 스테파니에게는 강렬한 태양빛과 따스한 태양볕을, 뼈가 부서진 알리의 손에는 황금빛 트로피를 쥐어준다. 몸으로 시작된 두 남녀의 사랑이 원시적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본능적인 것이 인류의 근원이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두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는, 자신의 성 정체성까지 잃어갈 뻔했다. 그것을 깨워준, 여자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준 것이 알리의 남성성이다.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루지만 결코 그 소재에만 국한된 작품으로 봐서는 안 된다. <러스트 앤 본>은 온갖 희망과 구원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고래를, 자신의 손을 부러뜨리게 만든 아들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스테파니와 알리는 구원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부를 앗아간 동물과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용서 뿐이다. 이것들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원시적인 사랑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을 감상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지는 연출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러스트 앤 본>의 전작 <예언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바 있으며, <러스트 앤 본> 역시 수많은 영화제에서 사랑받은 작품이다. 최근작 <디판>으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뛰어난 감독이다.


한 편의 로맨스이지만 다양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영화 <러스트 앤 본>은, 대중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작품이다. 뜨거운 사랑이 무엇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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