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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과자책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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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문

마녀 손가락 쿠키


 나에게는 네 살 터울의 언니가 하나 있다. 목소리 큰 거랑 겁 많은 것 빼고는 거의 정반대인 우리 자매는 자라나면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때로는 애를 타게 한 것 같다.      


 우리 자매가 얼마나 다르냐면, 언니는 지금 유행하는 패션 모두 20년 전에 본인이 입었던 옷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셔니스타’이고, 나는 멋은 잘 모르겠고 뭐 하나 꽂히면 그 옷이 구멍 날 때까지 입는 ‘패션계의 외골수’라고나 할까?

 엄마는 언니의 가득 찬 옷장과 신발장을 보며 뭘 이렇게 사다가 나르냐고,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딱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봐!’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는데, 나는 엄마의 옷장이 아닌 ‘옷방’을 보며 언니가 우리 엄마 딸임을 확신한다.




 우리 자매는 어릴 적부터 엄마랑 셋이 살았다. 여자 셋이서만 산다는 것은 매사에 불안함이 뒤따르는 일이었고, 여자 혼자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자주 맞닥뜨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 엄마는 일흔이 가까운 노인이 되셨지만 어린 두 딸과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었다.    

 

  나는 그 당시 너무 어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언니는 그 무렵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호되게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엄마는 자주 아빠에 대한 원망의 화살을 우리 자매를 향해 겨누었고, 그때마다 엄마와 언니는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엄마가 언니에게 네 동생만 데리고 살 테니 너는 네 아빠 따라가 살라고,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가슴을 치며 어깃장을 놓을 때면 언니는, 도대체 아빠가 있는 곳이 어디냐며 주소라도 알려주면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책가방에 옷가지를 구겨 넣으며 악을 써댔다. 한 마디도 안 지고 말대답을 하는 언니에게 엄마는 울먹이며 ‘딱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봐!’ 하셨다.




 우리 셋은 여러 날이 험난했지만 함께여서 잘 헤쳐나갔고, 시간이 흘러 언니와 나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대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언니는 엄마랑 그렇게 싸우더니 혼자 계실 엄마가 걱정되어서 결혼 후 5년이나 엄마 옆집에 살았다. 그리고 또 하나,   

  

“딱 너다 너 어디 잘 키워봐. 하하”     


 엄마 말씀대로 우리는 서로를 쏙 빼닮은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엄마는 손녀 손주를 보며 지난날의 슬픔을 모두 잊은 것처럼 기뻐하신다. 언니는 내게 종종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엄마에 대한 연민이 끓어올라 슬퍼진다고 말한다. 나 역시 언니처럼 나의 행복을 통해 비로소 엄마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고는 한다.    

 

 “딱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     


 코딱지만 한 녀석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아이랑 부대끼며 힘에 부칠 때면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오면서 곧장 엄마 생각이 나 흠칫 놀라고는 한다. 그러면서 또, 이 말을 통해 우리 자매가 엄마를 살게 하는 힘이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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