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스콘
모처럼 친한 언니들과 아이들 없이 엄마들끼리만 모여 근처 맛집에서 점심도 먹고 예쁜 카페에서 수다도 떨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 일과가 끝나면 한 집에 모여 다 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그게 어디 제대로 노는 것인가? 셋이서 각자 아들 하나씩 달고 모이면 목소리만 커지고 대화 내용은 영 맹탕에다 다들 돌아가고 나면 더 놀고 싶은 아쉬운 마음만큼 잔뜩 어질러진 자리가 남는다. 그래서 우리도 다음에는 애들 없이 좀 편하게 보자고 여러 번 말 만하다 어렵게 날을 잡은 것이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둔 언니들과 시간을 맞추려면 등교 후 일찍 만나야 했다. 나는 전날부터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미리 계획을 세우고 잠이 들었는데, 하필이면 전날 회식을 하고 온 남편은 두루가 몇 번을 불러도 끙끙거리기만 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겨우 일어나 거실로 나온 남편은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 것이 딱 봐도 숙취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괜히 약이 올라 말도 붙이지 않고 두루의 등원 준비를 떠넘기고는 ‘너 어디 한번 이거 먹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부글부글 끓는 물에 여왕님이 만드셨다는 달콤한 맛의 카레 가루를 부었다.
아, 이 인간은 얼마나 편할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지인들과 함께 근처 술집에 가서 남이 차려주는 술상에 맛있게 한잔 기울이면서 자기들이 하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들 없이 편하게 씹어주고 싶은 사람들 욕도 하겠지? 그래, 아예 처음부터 식당을 고를 때 아이들이 먹을만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어른들만의 시간일 것이다.
속으로는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얄미운 남편이 먹을 밥까지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어찌나 약이 오르던지, 화가 난 나는 나무 주걱을 휙휙 젓다가 그만 카레가 냄비 바깥으로 살짝 넘치고 말았다.
오늘 점심은 내가 사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퉁을 주고 나오니 밥값이 많이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선뜻 카드를 긁기가 어려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제 발 저린 기분은 뭘까. 맛이라도 매콤한 것으로 해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들이 나 막내라고 매번 사주기만 해서 오늘은 내가 냈어’
‘잘했어. 더 맛있는 거 사주지 그랬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써. 자기도 애 보고 살림하느라 고생이 많지. 오늘은 끝나자마자 갈게. 미안해’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에 먹을 콩나물국을 끓이고, 같이 공연하는 배우들과 나눠 먹으라고 스콘도 잔뜩 구웠다. 내가 만든 과자 중에서 남편이 제일 잘 먹는 옥수수 스콘. 배는 잔뜩 나와가지고 술 냄새 폴폴 풍기며 들어온 날에도 식탁에 옥수수 스콘이 있으면 꼭 하나는 먹고 자더라. 꼭 손도 안 씻고 맛을 봐 진짜. 아유, 꼴 보기 싫어.
너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