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같이 출근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는 삶 어떤데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곁에 남자가 없어야 한다고. 각자 하루를 보낸 뒤 저녁이 되어 집에서 만나는 게 더 애틋하고 반갑지 않겠냐고. 사실 이게 대부분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일 거다.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하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누군가 한 명 이상이 일을 하는 시간에는 배우자와 함께하는 일이 드물지 않을까?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작년 5월에 결혼했고, 남편과 나는 동갑내기 영화과 CC다. 남편은 대학 졸업 후 상업영화 현장에서, 나는 영상 콘텐츠 회사에서 일했다. 남편이 영화를 관둔 시기와 내가 회사를 관둔 시기가 비슷하게 맞물리면서 둘 중 누군가가 '우리 같이 일 해볼래?'라는 말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함께 프리랜서 PD로 일하게 되었다. 영화 현장에서 촬영장이 돌아가는 흐름과 빠릿빠릿함을 배워온 남편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현장을 진행하는 데에 능숙했고, 밤낮없이 편집을 해왔던 나는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꼼꼼히 만드는 방법에 능했다. 다행히 함께 일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과 의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사업자를 냈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공동사업자로 남편 이름을 올렸다. 지방 출신인 남편은 서울의 자취방에서, 그리고 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경기도의 집에서 일했다. 중간에 함께 작업실도 가져보긴 했는데, 내가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기에 지치기도 하고 결혼 준비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약해보고자 각자의 집에서 일했다. 우리는 어차피 프리랜서고, 서울에서 미팅이나 촬영이 잡히지 않는 이상 굳이 각자의 집 밖에 나갈 일은 없었다. 업무 회의는 카톡이나 전화로 했고, 종종 날씨가 너무 좋은 날엔 카페에서 만나서 같이 일했다. 물론 일할 때 말고도 놀고 싶고 보고 싶을 땐 데이트도 했다. 일단 동업자이기 전에 사귀는 사이였으니까. 근데 대체로 데이트를 할 때도 주로 일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결혼 전, 양가 부모님께서는 모두 우리를 걱정하셨다. 둘이서 그렇게 하루종-일 붙어 있어도 괜찮겠냐고. 둘 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걱정보다, 우리가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걸 걱정하셨다. 결과적으로 결혼한지 1년이 된 지금, 남편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꽤나 만족스럽다. 언제든 회의할 수 있고, 일하다가도 같이 놀 수 있고, 여러모로 같이 일하면서 낼 수 있는 시너지가 상상 그 이상이다.
우리는 대표 두 명이 전부인 소규모 프로덕션이다. 언젠가 일을 많이 받아서 한창 바쁠 때, 왜 직원을 뽑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우선 그 이유는 그럴 만한 여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직원이 생기면 월급을 줘야 한다. 우리가 일이 많은 달에도, 아예 없는 달에도 월급은 언제나 나가야 한다. 사실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꾸준하게 일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다행히 여태까지는 운이 좋았는지 많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지만, 딱 우리 둘만 먹고 살기 좋을 정도로만 벌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이 동시에 몰려서 너무 많을 때는 주변에 믿을 만한 용병들에게 부탁한다. 같은 영화과를 졸업한 동문들이나, 함께 영상회사를 다녔던 전 직장동료들에게 외주로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편집 일을 주는 게 두렵다. 클라이언트가 언제 어떻게 피드백을 많이 줄지 모르는데, 회사를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와 내 남편처럼 영상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원래 맡아서 하던 일도 있을 거고 어느 정도까지 피드백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역시 이런 상황을 모른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쨌든 일을 맡겼고, 원하는 기한 내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영상 일도 중간 역할이 많이 껴있을 수록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 여러 계층(?)에서의 피드백이 쌓이고 쌓여서 편집자에게까지 오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의 일은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광고주와 대행사 단계에서부터 피드백이 항상 많다. 이건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작업자의 실력 부족이 원인도 아니고, 우리가 중간 역할을 못해서도 아니다. 그냥 각자 영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다. 영상 작업을 직업으로 하는 게 이런 점 때문에 힘들다. 밤낮이 없고, 영혼까지 갈리는 느낌이 드는데, 피드백이 많아지면 괜시리 자존감도 떨어진다.
결국 그렇다면 힘든 일은 남편과 내가 맡아서 하게 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다. 우리 이름으로 받은 일이니까, 우리가 해야지 뭐.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유형의 클라이언트와 대행사 담당자들이 있는데, 그걸 이해하고 감내하고 때로는 불편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일을 받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열심히 만든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결국 우리 이름을 내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남편과 함께 일하며 전우애를 자주 느낀다. 그렇다고 언제나 함께 웃고 있지는 않다. 서로가 예민한 상황에서는 조금씩 다투기도 한다. 급박한 상황인데 이미 잠을 많이 못 자서 몸이 허약하고 신경이 예민할 때는 어쩔 수 없다. 보통 급박한 상황과 잠을 못 자는 상황은 함께 온다. 그래도 우리는 자본주의에 훈련된 사회인들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클라이언트에게 상냥하게 대하며 급한 일부터 먼저 해결한다. 그 뒤에 몸과 정신이 회복되었을 때 둘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풀곤 한다. 이런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더욱 더 돈독해지도록 만들어준다.
우리는 같은 입장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대체로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고, 화가 나는 순간에 함께 화를 낸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함께 미팅을 다녀온 일이 성사된 뒤 우리 스스로 기획안과 대본을 쓰고, 직접 현장에서 연출을 하고 편집을 마친 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거실 TV로 함께 감상할 때다. 손에는 맥주캔을 쥐고서 우리가 만든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 영상 한 편을 위해 우리가 겪은 우여곡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분명 웃자고 만든 예능인데 다 보고 나면 둘 다 감동에 가득찬 표정이 된다.
결혼을 하고서 초반에는 집에서 일을 하다가, 결국 함께 집 근처의 작업실로 나왔다. 집에서 일하는 것도 여러 장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과 집을 분리하는 게 우리의 멘탈과 가정의 평화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새로 입주한 작업실은 우리와 비슷한 프리랜서들이 모여있는 공간인데, 단순한 공유 오피스가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느낌도 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남편과 나는 함께 일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집에서 보는 남편과 작업실에서 보는 남편은 사뭇 다르다. 집에서는 같이 춤도 추고 이상한 소리도 많이 하는데, 작업실에서는 점잖게 일하다가 착한 말만 하고 퇴근하는 것 같다. 서로의 사회적인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난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또 각자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부부 둘이 하루종일 함께 있다고 해서 늘 걱정스러운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의 우리는 함께 일하는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지 않나 싶다.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