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누워만 있던 내가 무게 치는 재미를 느끼기까지
프리랜서는 누가 시켜서 출퇴근을 하지 않는 환경이기에 스스로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루틴을 짜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번아웃이 왔을 때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초창기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쉬는 시간에는 누워만 있었다. 실제로 방에서만 일하던 시절에는 컴퓨터와 침대의 거리가 정말 1m도 되지 않았었고, 당시에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맥북을 쓰고 있어서 조금만 무거운 영상 작업을 돌려도 오류가 나거나 느려서 계속해서 자잘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완성 후 출력을 걸 때는 그냥 잠자는 시간이었다. 작업하느라 지치기도 했고, 어차피 느려터진 맥북에서 15분 짜리 영상이 고화질로 뽑히려면 길게는 1~2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그래서 늘 파일 전달 시점보다 2시간 먼저 작업을 마치고 익스포트를 걸어둔 뒤에 낮잠을 잤다.
이런 핑계들로 인해 틈틈이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사람 몸은 계속 누워 있으면 그냥 정말 계속 누워 있게 되더라.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파일이 뽑히길 기다리며 또 잘 수 있었고, 언제 피드백이 또 날아올지 모르니 어디 나가서 산책도 맘편히 못했다. 그럴 때도 피드백을 기다리며 집에서 놀거나 낮잠을 잤다. 자연스럽게 내 몸은 점점 할머니 체력이 되어갔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자극적인 음식도 자주 먹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내 몸에게 정말 미안할 정도로 최악의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취미. 운동
올해 초,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시키고자 몇 가지 결심을 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월급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는 입금 시즌이 그때마다 달라 큰 돈을 쓰는 게 두려웠기에 대체로 늘 구두쇠처럼 살았는데, 딱 두 군데는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하나는 느려 터진 맥북을 대신할 최신형 맥북 프로를 구매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PT를 등록하는 것. 최신형 맥북 프로는 항상 작업 속도가 느려서 복장이 터졌던 나의 스트레스를 아주 시원하게 해소해주었다. 말 그대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험을 했는데, 렉 없이 원활하게 작업 후 출력까지 빠르니 남는 시간을 내 시간으로 알차게 쓸 수 있었다.
PT를 시작한 건 과장 조금 보태서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사실 PT를 등록하기 전까지도 비싼 수업료에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진심을 다해 운동을 가르쳐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값어치 이상의 경험을 하고 있다. 아무런 운동 지식이 없는 내가 온전히 선생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혼자서 무게를 치는 자유 운동이 가능하기까지는 PT를 시작하고도 약 두 달이 걸렸는데, 그동안 태어나서 한 번도 스스로 만들어본 적 없던 근력이 만들어지는 경험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왕 하는 거 운동을 제대로 배워서 내 걸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PT 30회 이용권을 끊었고, 시작 후 처음 5회 정도는 땀이 별로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주로 머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맛보기로 알려주셨고, 각종 운동을 자세부터 천천히 잡아주셨다. 첫 주에 스쿼트는 맨몸으로, 랫풀다운은 고무 밴드로, 데드리프트는 가벼운 나무막대로 했다. 무리하지 않고서 운동에 재미부터 붙일 수 있도록 천천히 진행했다. 워낙 운동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와서 굳어있던 몸이다 보니 자세만 알려줬는데도 운동 효과가 나고 피로가 풀렸다.
시간이 흐르고 PT를 15회 정도 받았을 무렵,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들을 혼자서 자유 운동 시간에 복습을 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선생님 없이 뭔가를 하려니 갑자기 자세가 기억이 안 나고 엉뚱한 데에 힘이 들어갔는데, 그러고 나서 다음 수업 때 선생님한테 혼자 운동 중 겪었던 문제들을 말씀드리고 고쳐나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웬만한 머신을 이용하면서 점점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운동하는 동안 에어팟을 꽂고 신나는 걸그룹 노래들을 듣다 보면 힘들던 무게도 번쩍 들면서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운동을 하면서 식단 관리를 하진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외형 변화는 없었지만, 스스로 나 자신이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헬스장에 가기까지는 죽도록 피곤하고 힘든데, 신기하게도 헬스장에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의욕이 샘솟았다. '지난 주보다 5kg 더 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선생님께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귀에서 흘러나오는 독기 가득한 르세라핌 노래를 부스터 삼아 운동한 뒤, 샤워까지 하고서 작업실로 출근하면 완벽하게 개운한 하루가 시작됐다.
운동이 주는 효과는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일하는 자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졸린 목소리로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지난 날들과 비교하면, 이제는 오전에 연락이 오더라도 씩씩하고 밝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 대체로 클라이언트들은 출근시간 이후인 오전 10시 30분경부터 연락이 오는데, 대체로 내가 9시쯤 운동을 시작해서 씻고 나오면 10시 30분 정도였다. 운동으로 한껏 자신감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니 오늘의 일과를 해내기 전 막연하게 느끼던 두려움도 줄어들었고, 업무 스트레스도 어차피 다음 날 아침 운동 시간에 풀 수 있을 테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번아웃이 오는 일도 줄어들었다.
또한 운동을 통해 근력을 키우면서, 마음에도 근육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찌뿌둥한 상태에서 똑같은 일만 반복했기 때문에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신경이 곤두섰었다. 작은 일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건강하게 푸는 방법을 몰랐었다. 꾸준히 운동하는 삶을 살게된 이후, 업무 스트레스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나에게 닥친 일들을 의연한 자세로 대할 줄 알게 되었다. 일 이외의 곳에서 재미와 동기부여를 느끼다 보니 인생에서 일이 전부가 아니게 됐고, 그래서 일적으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러려니 마인드'가 되었다. 성격이 밝아지고 예민함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할 때도 잡생각 없이 밝은 태도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화가 나거나 하기 싫은 일을 대할 때도, 피할 수 없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인드컨트롤하며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일을 하며 겪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자고 난 다음날과 다다음날까지 부정적인 요소를 안고 가지는 않게 되었다.
아직 나는 내가 3대 몇인지도 모르는 헬린이다. 여전히 스쿼트 몇 번에 숨을 헐떡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고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머리가 새하얘지며 헥헥거린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동기 언니가 나를 보며 밝고 편안해졌다고 했을 때, 나만의 루틴을 꾸준히 지켜가며 역대급으로 힘든 장기 프로젝트를 밤샘이나 번아웃 없이 몇 개월째 진행하고 있을 때 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워낙 의지박약이라 선생님과의 PT가 끝나고도 혼자서 평생 꾸준하게 운동할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운동만큼은 정말 죽는 날까지 계속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