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비 Jun 20. 2023

허난설헌으로부터 도착한 질문@아난

#2. 며느리는 왜 나쁜 시어머니가 되는가?

강릉 허난설헌 생가터

날 좋은 5월,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로 여행을 갔다. 강릉 최고의 문장가 집안답게 여러 칸이 연결된 꽤 큰 규모의 한옥이었다. 집 뒤쪽에는 굴뚝이 솟아있고 주변에 예쁜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화단 옆으로 어린 시절 이름인 ‘허초희’로 불리며 뛰노는 허난설헌이 보이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한옥 한쪽을 보니 일찍이 초희의 재능을 알아본 따뜻한 큰 오빠이자 첫 스승 ‘허봉’이 초희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시선을 돌리면 허봉이 친구이자 천재 문장가임에도 서얼이라 벼슬길이 막힌 ‘이달’을 초희에게 새로운 스승으로 소개한다. 돌아 나와 마주한 방에는 허균의 초상화가 놓여있다. 시대를 앞서 평등을 부르짖으며 홍길동전을 지은 동생 ‘허균’이 천진난만한 소년이 되어 초희에게 글을 배우고 있다. 다소 매서운 인상의 허난설헌 초상화가 있는 한옥 처마 아래에 앉아 쉬며 안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 세 사람이 시와 그림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 모습이 보인다. 집 뒤로 걸어 나가자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뚝 솟은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흔들리며 선선한 바람을 탄다. 허난설헌이 어린 시절 그렸다던 ‘양간비금도‘가 떠오른다. 키 큰 나무 옆에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 허초희가 활짝 웃고 있다.


허난설헌이 어린 시절 그렸다던 양간비금도

행복했던 강릉 친정에서의 삶과 대조적으로 비극적인 시집살이를 산 허난설헌은 ‘시집간다.’라는 말이 시작된 ‘친영제’의 1세대이다. 친영제는 17세기 이후 여자가 시가에 살며 시부모를 봉양하는 결혼생활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17세기 이전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에서도 주로 처가에서 결혼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친영제가 시작되면서 허난설헌은 남자형제와 대등하게 교육을 받고 존중받던 강릉의 친정을 떠난다. 그녀는 당시 최고 권세가이자 보수적인 안동 김씨 김성립과 결혼하여 안동에 터를 잡게 된다. 그녀의 뛰어난 재주에 비해 과거 급제가 늦어지며 시기하는 남편, 시가와 갈등을 겪는다. 불행은 이어져 역병으로 어린 자식들까지 먼저 보내고 27세에 요절했다. 만약 허난설헌이 다시 태어나 지금 21세기에 환생했다면 세상살이 나아졌다고 할까?


세월이 흘러 고생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악습을 끊어주면 좋겠건만 안타깝게도 여전한 세상이다. 나 역시 결혼 전 ‘고부갈등’은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의 과장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조선 시대와는 다르게 여성 인권 수준이 많이 올라가서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믿었으나 착각이었다. 결혼 후 시가에 가면 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이어질 때가 있었다. 나를 누르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시가에 갈 때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시가와 남편으로부터 온갖 시기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한 공간에 살아야 했던 17세기 허난설헌과 21세기의 내가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펑펑 울며 위로했을 것이다. “허선배. 시어머니는 왜 이렇게 며느리에게 바라는게 많을까요?"


왜 한평생 힘들었을 며느리들은 김성립의 엄마와 같은 시어머니가 되어 대대손손 이어져 오고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자의식 없이 ‘역할만이 남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는 사는 동안 선택권이 없었다. 주어진 역할과 의무에 대하여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떠보니 어느 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시부모님의 뜻대로 하루가 종속된다. '이 삶이 내가 원하던 것인가?', '나에게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급급하기에 질문을 던지면 속만 시끄러워질 뿐이다. 일생의 목표는 ‘무탈한 가정’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허초희는 사라지고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한평생 김성립의 엄마도 그 의무와 무게가 힘들었을게다. 생의 끝자락에서 내가 행복한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물음표를 지워버린 지 오래기에 이마저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마음 한쪽이 허무해져 온다.


가부장제의 ‘며느리다움’이 대물림되는 두 번째 이유는 가부장제 안에서 사고가 갇혀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며느리 시절 힘든 기억은 그저 무용담이 되고 시어머니가 된 그녀는 이제 새로운 후임자를 찾을 뿐이다. 인간 허초희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내 아들을 챙겨줄 사람, 내 아들의 자식을 낳아줄 사람으로서 자신이 그랬듯 며느리 역할에 충실한 사람만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에도 현대에도 김성립의 엄마에게는 내 아들의 출셋길을 위한 조력자로서 충실 할 때만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시대상이 변하여도 가부장제에 갇혀 제한된 그녀들의 삶에서 시인 허초희나 직장에서 성공하는 현대의 며느리는 필요 없다. 자신이 그랬듯 시부모님에게 꼬박꼬박 안부 인사하며 아들을 잘 보살피는 며느리가 ‘당연’하다. 이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배려를 이제 하는 것뿐임에도 오히려 ‘나 요새 며느리 눈치 보잖아’라는 말로 자신이 시대에 맞는 좋은 시어머니라 생각한다. 정작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독서나 좋은 사람을 만나며 자신이 시대 흐름에 맞춰 잘 가고 있는지 조용히 성찰한다. 그러나 가정의 틀에 갇혀 고립되어 있던 사람은 나 정도면 좋은 시부모인데 왜 이러한 갈등이 일어나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하며 갈등을 이어간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살던 친정을 떠나 여자라는 이유로 억압된 결혼생활을 한 허초희와 21세기의 나는 똑 닮아있다. 나 역시 의충효 문화에서 살아왔기에 결혼 후 시부모님이 내게 ’친정을 잊어라’ 고 말하시는걸 듣고 앞에서는 아무 말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기만 했다. 시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상처가 깊었는지도 모르셨다. 시가에 갈 때마다 이어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상담실로 뛰어갔다. 상담 선생님에게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속앓이를 털어내며 말했던 여러 상황을 조합해보니 결과는 놀라웠다. 시부모님의 성차별적 발언은 오히려 내가 시부모님과 잘 지내보려고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할 때 일어났다. 내게 불편했던 발언들은 사실 시부모님이 내가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는 팁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라는 사람이 존중되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스승, 형제들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랑받는 삶을 살던 허초희가 시가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비참함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시대가 흐르고 있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갇힌 사람의 시계는 흐르지 않았다.


이들의 시계가 흐르지 않게 강력하게 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성인으로서 ‘독립하지 못한 남편과 아들’이다. 자녀 양육의 목적은 성인이 되면 사회로 나가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독립시키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대로 살아야하는 소유물이 아니다. 성인이 되면 각자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시집간다‘라는 말은 구시대적 발상의 잔재다. 며느리가 시가에 들어가는 것이 결혼이 아니다. 결혼은 각자의 집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남성은 여전히 아내가 며느리로서 자신의 집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나를 열심히 키워주신 부모님을 위해 우리 부모님이 바라시는 안부 전화, 생신상, 김장 등을 배우자가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한다. 혹은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하지 말고 며느리, 아내답게 살 것. 너 자신을 버리고 가부장제의 바퀴가 되어 살 것을 주문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되어 21세기까지 김성립의 엄마는 대물림되어 내려왔다.


허난설헌 공원 뒤로 펼쳐진 숲길

허난설헌이 이전 세대처럼 강릉 친정에서 결혼생활을 꾸려나갔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니 친영제가 되었더라도 안동 김씨 일가가 허난설헌을 ’김성립의 삶을 위해 내조하는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인간 허초희로서 가능성을 무한히 펼쳐나갈 수 있도록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과거와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또 다른 허난설헌이 결혼으로 날개가 꺾였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허난설헌은 자신의 문장과 글로 후세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결국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까지' 이렇게 사람을 틀에 가두며 옥죄일 거냐고 묻는다. 이제는 변화해야 하지 않겠냐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귀하게 보라고 하는 허난설헌의 목소리가 계속 맴돈다.




[#2. 며느리는 왜 나쁜 시어머니가 되는가?]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8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7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ddbee/19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못골, 흔희, 아난의 글을 2주마다 뉴스레터 땡비로 받아보는 거 어때요?

 - 땡비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35860

 - 지난 글 보러가기 : https://ddbee.stibee.com/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는 왜 며느리를 학대하는 시어머니가 될까?@못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