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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06. 2023

튀르키예 동물들의 경험치에 대하여 (@아난)

#5. 튀르키예에 대하여


갈라타성 인근에 위치한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어젯밤과는 달리 이른 아침 한적해진 골목이 낯설었지만, 오히려 그 분위기가 더 좋았다. 길게 펼쳐진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자 양옆으로 연결된 골목에서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사람을 봐도 도망가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따라오고 애교를 부렸다. 우리는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찍거라’하는 느낌으로 고양이들이 쭈-욱 기지개를 켜며 포즈도 잡아준다.


여행 내내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어디를 다녀도 크기에 상관없이 개와 고양이들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다. 대형견들은 더위를 먹은 것인지 가게 입구 앞 그늘에 축 늘어져 더위를 피한다. 숙소 옥상부터 길거리, 차 위 보닛까지 고양이들은 배를 다 뒤집어 보이며 자고 있다. 어찌나 편하게 자는지 길 가는 내내 개와 고양이 구경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바쁜 인간들과 대조적일 정도로 동물들은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처럼 느린 박자로 움직였다. 


그런 고양이와 개들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얼마나 많은 세대로 이어져서 개와 고양이들이 ‘인간은 위험하지 않다’를 경험했으면 이렇게나 편하고 행복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걸까?” 튀르키예에는 동물에게 잘해야 내세에 좋은 삶을 산다는 믿음이 있어 동물에게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나라라고 한다. 고양이와 개들의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때부터 누적되어온 따뜻한 경험일까. 


아비노스라는 도자기 마을에서 하얀 큰 개가 물가에서 홀로 물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무더위를 식히려 물을 끼얹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그 순간 나는 그 개가 누구의 개도 아닌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튀르키예에 대하여]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내가 만난 튀르키예 https://brunch.co.kr/@ddbee/33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환대 https://brunch.co.kr/@ddbee/30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모든 욕구 위의 종교 https://brunch.co.kr/@ddbee/32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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