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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06. 2023

환대 (@흔희)

#5. 튀르키예에 대하여


항공권을 발권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중에 터키 항공의 직원들이 아이를 보더니 다른 창구를 안내해 주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체크인 창구가 4~5개 정도 열려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승객들은 바로 탑승 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역이다. “네 덕분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구나. 고마워.“하고 말하니 아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싱긋 웃는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은 습도가 낮은 쾌청한 저녁 바람이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환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튀르키예 사람들은 아이를 보고 웃어준다. 관광지라 붐비는 화장실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으니 이미 줄을 서 있던 사람이 아이에게 순서를 양보해준다.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홍합밥이 상했나 보다. 어른들에 비해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운다. 카파도키아에 가는 한 시간 정도의 비행중에 갑자기 아이가 토할 것 같다고 말한다. 비닐봉지 손잡이를 아이의 귀에 걸어 주고 혹시 모를 참담함을 대비하고 있으니 옆자리의 승객이 “아이가 어디 좋지 않냐”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걱정스레 묻는다. 옆자리 승객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보고 열이 없는지 확인해보며 불안한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지나가던 승무원이 아이를 보더니 “문제가 있냐”고 물어 “아이가 복통이 있다”고 하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분의 비닐봉지, 엄청난 양의 휴지, 미네랄 물 등을 챙겨 주었다. 주변에 앉은 다른 승객들도 아이를 ‘프린세스’라고 부르며 응원의 말을 건넨다.


  다행히 아이는 잘 견뎌주었고 카파도키아 여행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니 호텔 직원이 아이를 보고 '프린세스'라고 부르며 팔을 벌린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고개를 끄덕이니 아이가 그 직원에게 달려간다. 직원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한 바퀴 돌아준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카파도키아 투어를 시작하며 가이드의 안내를 듣고 있는데 아이가 지친 표정이다. 근처 벤치에 앉아있으니 한 할머니가 옆에 같이 앉는다. 나는 영어로, 할머니는 튀르키예 말로 소통을 한다. 무슨 말인지 서로 알아 듣지 못하지만 표정이나 눈빛이 참 좋다. 뜻은 알지 못해도 좋은 말처럼 느껴진다. 웃으면서 내가 무슨 말인지, 사실 못 알아듣겠다고 말하니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얼굴에 갖다 대는 시늉을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가이드에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해석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아이가 참 예쁘다고 하시네요. ”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안다. 배려와 존중을 받아본 사람이 누군가를 존중하고 배려해 줄 수 있다. 아이에 대한 튀르키예의 환대가 부러웠다. 그곳에서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따뜻한 말과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고 자라난 튀르키예 어린이들은 자라서 또 다른 어린이에게 자신이 받았던 환대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 갔다. ‘8세 미만의 어린이와 개는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노키즈존, 케어키즈존이라는 말이 장소를 채운다. 튀르키예에서 환대받고 온 어린이는 한국에서는 잠재적인 사고뭉치로 대우받는다. '묻지마 폭행' 사건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지나친 민원에 초등 교사가 여럿 계속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튀르키예에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것. 많은 문제의 출발점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5. 튀르키예에 대하여]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내가 만난 튀르키예 https://brunch.co.kr/@ddbee/33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환대 https://brunch.co.kr/@ddbee/30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모든 욕구 위의 종교 https://brunch.co.kr/@ddbee/32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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